▲ 안상윤 건양대 병원관리학과 교수 |
물론, 지난해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4개 공룡병원들이 낸 적자액이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유명 의사들은 물론 지방 환자들마저 싹쓸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서 나온 적자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자못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해당 병원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위축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분위기 속에서 이들 빅5 병원의 무소불위의 갑(甲)질도 영향을 받고 있고, 의료서비스의 한계효용이 포화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 의료업계가 해야 할 일은 소비자 중심 의료시스템으로의 전환과 수익의 달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구조조정 내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우선, 규모가 큰 병원들의 경영은 경영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의사는 10년 가까이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질병치료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다. 바꿔 말하면, 조직관리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직원이 수백 명에서부터 수천 명이나 되는 대규모 조직의 관리책임을 맡긴다는 것은 마치 장님에게 길을 묻는 것과 같다.
미국의 저명한 의료경영 전문가들도 의사들은 그 특성상 시야가 좁고 질병치료라는 완벽성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에 미시적, 거시적 관점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경영전문가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종합병원의 경영을 의사가 맡고 있는 비율은 30% 정도이며, 이들도 경영학석사학위를 소지하도록 하고 있다. 진료와 경영은 그 차원이 엄연히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의 질병치료가 어려운 작업인 것처럼 조직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 또한 다른 차원에서 고도로 힘든 작업이다.
과거에는 의사들도 병원경영에서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수요가 충분하고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의료시장에서 이와 같은 환경은 사라졌으며 앞으로 다시 오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병원들은 오지도 않을 선진국 환자들을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외국 컨설팅업체에 수십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내국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국제인증을 따는데 매달리는 등 내실경영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업계는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마케팅과 효과적으로 연계시키지 못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욕구충족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은 오직 병원만이 아니다. 약품, 건강보조식품, 운동, 명상, 자연치유, 대체의학 등 다양한 수단들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건강하려면 병원에 가지마라는 취지의 책이나 방송들도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욕구경쟁자들 중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다.
많은 의사 경영자들이 병원은 진료를 잘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여전히 마케팅을 폄하하는데 익숙하다. 이는 마케팅이 소비자 입장에서 최고의 품질유지를 기본가치로 삼고 있는 철학이라는 원리조차 모르기 때문에 갖게 된 인식이다. 병원의 마케팅 실패로 의료소비자들은 여전히 병원이 환자보다는 오히려 의료인의 복지를 위해 기능한다고 믿고 있다. 민주화, 개방화 시대 속에서 의료업계가 낡은 신화를 깨고 소비자 중심의 경영혁신을 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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