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준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하지만, 기사에는 이들 집단이 어떻게, 왜 엘리트집단이 될 수 있는가 까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필자도 애써 거기까지 고민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타주의란 무엇인가, 영향과 의미는 과연 어떠할까 등등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금 '고찰'해보고 싶어졌다.
특히, 봉사를 통해 남을 이롭게 하고 그것이 결국엔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공공의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간단한 논리의 핵심으로서 이타주의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다.
문뜩, 필자는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국민적인 자원봉사활동들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당시 이어졌던 다양한 사회적이고 국민적인 관심은 개인적이면서 집단적 도움 행동들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주민들에 대한 훌륭한 응원 메시지이자, 동시에 공동체 의식 산물로 그들의 심리적 안정과 지지, 사회적 결속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이타적 활동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전혀 새롭지 않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봉사활동이 반드시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 사례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민적 관심과 염원을 담은 크고 작은 국가 행사들의 완수에도 적지 않은 이바지 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더 앞서서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로 나와 이웃을 이롭게 했던 행동들은 역사 속에서도 이미 존재했다. 더 조직적인 연대와 집단화를 통해 상호 부조하면서 궁극에는 개인과 지역사회 자조와 자립을 가능케 했던 계와 두레, 품앗이, 향약 등 전통적 활동들이 바로 그 예다.
이런 활동들을 가능하게 했던 기본적 철학이 바로 '이타주의'다. 이타주의적 행동이란 다양한 자원 활동의 동기요인으로서, 이를 통한 결과로서의 봉사활동 참여는 타인의 고통이나 상황을 서로 나누거나 함께 인식하면서 상호연대와 정서적 원조를 제공한다. '타인'을 뜻하는 라틴어 'alter'(other)에서 기원한 '이타주의'(altruism, 利他主義)는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콩트(Comte)가 타인을 위한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를 'altruistic'(이타주의적)이라고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콩트는 인간의 타인에 대한 도움에는 자기이익ㆍ자기만족적 이기주의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비이기적인 욕구가 타인에 대한 도움으로 표출될 수 있는데, 바로 이를 이타주의라 정의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행위나 성향은 이른바 '친사회적'(pro-social, 親社會的) 행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친사회적 행동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뜻하며, 이는 남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게끔 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보수나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성격으로서의 이타성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진 것이다. 결국,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모든 자유 재량적 행동에 대한 포괄적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관점에서 이타주의는 친사회적 행동의 일부로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학자 발탈(Bal-Tal)은 친사회적 행동이 이타적으로 불리려면 충족되어야 조건을 제시했다. 발탈은 “첫째는 타인에게 이득을 주어야 한다, 둘째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셋째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넷째는 개인적 이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는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쉬울 듯하지만 참 어려운 가치지향이자 실천과제다. 방학과 휴가 등을 이용해 봉사단체나 복지시설 등에서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다. 흐뭇하기 그지없다. 이왕이면 양적 채우기보다는 진정한 봉사의 의미와 함께 이타적이면서 친사회적 가치를 체득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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