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묵 한밭대 총장 |
나라마다 중산층의 가치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얼마 전 어느 인터넷여론조사 발표가 흥미롭다. 미국시민은 중산층을 “자기주장을 떳떳하게 하고,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며, 사회적 약자를 지켜줄 수 있는 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영국도 유사하게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지키고, 법과 정의를 지키는 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프랑스국민은 “외국어 1개 이상 능통하고 스포츠와 악기 1개 이상 즐길 수 있으며, 요리 솜씨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분에 저항하고, 국가에 헌신적인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매우 다르다.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정도에 월 500만원 수입과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 할 수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소시민적 가치관에 멈춰있을 뿐 “법을 지키고 정직한 시민으로서 경제생활에 충실한 중간적 계층”과 같은 선진국형 중산층 개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사회갈등으로 양분되어 중산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NLL 문제로 여야 간에 진실공방 게임으로, 보수와 혁신세력은 극단적으로 대립하여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가속화되어 사회복지와 반값등록금 문제처럼 사회갈등으로 표출되고, 청년실업문제가 노소간 세대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연적인 물리화학적 변화에는 항상 전이 상태가 존재한다. 마치 철광석으로 철근을 만들기 위해선 용광로의 쇳물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최고 우수한 품질의 철근을 만들기 위해선 전이 상태인 용광로의 정교한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도 노동과 자본의 양극적 대립이론에만 치중하여 전이 상태인 중간층이 경시됐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회의 갈등과 불신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의 전이 상태 계층이 바로 중산층이다.
우리는 조선의 유학을 바탕으로 한 중용지도(中庸之道)의 우수한 가치문화를 갖고 있다. 중(中)은 양극(兩極)의 합일점이고, 용(庸)은 영원한 상용성(常用性), 즉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변하지 않는 진리다. 중산층의 중용적 가치가 두터우면 갈등은 전이 상태의 용광로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희망의 새 시대,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것은 사회통합이 우선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폭넓은 중산층이 필요하다.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탐독하신 박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용적 가치를 지닌 폭넓은 중산층으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고, 또 그것이 우리나라가 일류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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