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가 선진국을 모방해서 성장해 왔지만, 모방 전략만으로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기초연구 역량을 강화해 창조형 국가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추진되었으며, 기초과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고 기초과학 역량에서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 세계 일류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청사진과 명분에도 불구하고 과학벨트사업은 시작초기부터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지역 간의 갈등과 대립을 겪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대전(신동·둔곡지구)을 과학벨트의 거점으로 하되 대구·경북과 광주 등에 '연합캠퍼스'를 만들어 연구 기능을 분산하는 방안을 최종 결정했다.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은 대전에 들어서게 되며 거점지구와 연계해 응용연구 개발연구 사업화 등을 수행할 기능지구는 대전에서 40㎞ 이내에 위치한 청원(오송·오창), 연기(세종시), 천안 등 세 지역으로 결정됐다.
과학벨트에서 기초과학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이 핵심이 돼 진행한다. 기초과학연구원 산하에는 모두 50개의 연구단이 설치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이라는 거대 단일 기구에 기초과학 연구와 관련된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것이다. 거대 시설인 '중이온가속기'도 기초과학연구원의 부설 기관이다. 이러한 과학벨트사업의 당초 계획이 거점지구 부지매입비 분담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갈등을 표출하더니 이제는 과학벨트의 핵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을 엑스포 과학공원에 설치하는 수정(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학벨트사업은 합리성을 추구해야하는 과학기술분야에서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공약화해 추진된 사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일정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작을 했기에 추진과정에서 부터 유치를 둘러싼 지역간의 극심한 대립과 선정 후에도 이런저런 논란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정치화되다보니 과학기술의 타당성과 합리성에 의지하기보다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쟁의 대상으로 과학기술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정치화는 정치적인 이유나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과학기술의 타당성과 합리성이 부당하게 훼손되고 과학기술을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과학기술의 근본을 흔들게 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정치화는 최근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정치가 강력한 지역기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과학기술에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른 요구와 정책결정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 전성시대라는 말이 돌고 있다. 1972년 KAIST가 설립돼 고급 과학기술인재의 양성을 주도해 오다가 김영삼 정부에서 광주과기원(GIST)이 설립되더니 이후 대구경북과기원(DGIST), 울산과기대(UNIST), 한국해양과기원이 설립되었고, 최근에는 부산경남과기원과 전북과기원 그리고 강원과기원을 설립하기 위한 법안 발의와 지역의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과기원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더 이상의 과학기술의 정치화는 곤란하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지역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현안을 다루고 국가 경쟁력의 관점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정책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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