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배 송촌장로교회 목사 |
그러다 구슬치기를 배웠습니다. 소원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방 하나 가득 구슬을 쌓아 놓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얼마든지 구슬을 꺼내 들고 나갈 수 있다면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그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이 정겹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졌었다는 게 철부지였음을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난 깜짝 놀랐습니다.
구술을 방에 가득 채우려던 소원이 내게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것이 내 안에 여전히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난 여전히 구슬을 방안 가득 쌓는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것으로 대치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구슬과 땅따먹기는 끊임없이 다른 것들로 대치되었습니다. 그것은 때로 명예로, 돈으로, 이성으로 빌딩으로 좋은 차로 바뀌었습니다. 내 소원은 일관되게 딱지 쌓기였고 땅따먹기였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소유욕이고 탐심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난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유냐 존재냐를 논할 때도 난 소유하지 못한 자의 자기 합리화로 여겼습니다. 하나의 핑계거리를 찾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유가 중요하냐, 관계가 중요한가를 생각할 때 나는 확실히 관계보다는 소유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돈 때문에 관계를 무시했습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이 바쁘기에 진짜로 중요한 가정을 등한이 했습니다. 소유와 명예 어쩌면 그것은 내 삶의 존재이유였는지도 모릅니다. 내게 소유는 행복이요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유를 위해 살았음에도 난 많은 것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난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늘 거기서 찾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영화를 누린 사람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란 사람을 만났습니다. 구약성경을 통해서 만난 그의 고백을 듣고 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그에겐 많은 여인들이 있었고, 많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밤마다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소유하려고 하던 모든 것을 이미 다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행복해야할 그가 한 말인즉 “나는 허무하다”였습니다.
갑자기 내 인생의 목표에 혼란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공을 몰고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골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내가 솔로몬을 다른 책을 통해 만났다면 이런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믿는 성경이었습니다. 나를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성경을 부정하든지 아니면 내 목표를 수정하든지 하나는 해야 했습니다. 난 후자를 택했습니다. 난 솔로몬에게 크게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구술을 한 방 가득 채우기 위해 타는 목마름으로 목에 힘줄을 주고 열심을 내고 있을 것입니다.
소유에 행복이 없음을 스스로 깨우치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내 인생이 그 사실을 확인하는데 허송세월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딱지 쌓기를 하지 않습니다.
거기 행복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구술이 쌓이지 않았는데도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리 많은 땅을 소유했더라도 인생의 밤, 죽음이 다가오면 소유에 넉넉함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난 발견했습니다.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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