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 |
취병협의 백미는 비가 많이 오는 초여름이다. 맞은편 정자에 앉아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자면 몇 시간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다.
먼 곳에서 금산을 처음 찾는 친구에게 나는 취병협 맞은편 식당에서 어죽을 대접하면서 금산이 이런 곳이라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누구나 감탄한다.
이런 취병협이 몸살을 앓고 있다. 첫 번째 몸살은 7년 전, 비오는 날 폭포가 멋있으니 그 폭포를 항시 볼 수 있게 해서 관광객들을 모으게 해달라는 지역 상인들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선거로 당선된 군수는 즉석에서 '그러마' 하고 약속했고, 급조된 '인공폭포'는 강에서 플라스틱 호스를 절벽 위로 끌어올려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보기가 좋았고, 많은 외지인들이 감탄하는 명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 플라스틱 호스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짜'라는 것이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호스를 본 방문객은 실망한다. 그걸 가리겠다고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이제는 그 시멘트가 눈에 거슬린다. 마치 큰 회색 뱀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 같다. 자연을 훼손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산책로를 만든답시고 인공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계단이 '갓 쓰고 자전거 타는' 형국이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너무 보기가 싫다. 자연에 순응하도록 얌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문화적 마인드가 조금도 없는 사람이 만들었는지 주객이 전도되어 계단이 더 눈에 띄면서 거슬리는 모습이 되었다. 금산제일경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자연을 훼손한 것도 모자라 금산~영동간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그 취병협에 구멍을 뚫는다고 한다. 주민설명회에서 많은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강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금산~영동은 교통량도 그리 많지 않은 도로다. 편도 1차선으로도 불편없이 잘 살아 왔다. 편도 2차선으로 넓혀주겠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금산 제1경에 구멍을 뚫으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정도로 급한 도로는 절대로 아니다.
고작 4km 길 내는데, 다리 두 개와 터널 두 개 뚫느라 390억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공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여기는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다.
그 지역은 어떤 이가 버섯농장 하겠다며 야산을 까뭉개는 허가를 받고 나서 평탄작업을 한 다음에 전원주택지로 팔아먹으려 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특혜 논란으로 말이 많은 동네다.
국토관리청이 주관하고 각 지자체가 협력하는 형태의 공사라고 하는데, 지역 사정을 모르는 국가기관은 그렇다 치자. 금산군은 도대체 무얼 했는지 궁금하고 한심하다.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나서 자치단체장 잘 만나면 지역이 발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동네 여론이 갈라지면서 살기 힘든 고장이 되어버리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 간의 갈등이 문제라면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천혜의 자연은 우리 세대에 만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 빌려온 귀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러고 한 번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파괴할 때보다 열 배, 100배 더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이미 배웠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천년 후에도 씻지 못할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취병협은 상처투성이, 만신창이로 변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걸 막지 못한다면 나도 후손에게 고개 들지 못할 그 죄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 취병협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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