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만]세상에 침을 뱉기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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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만]세상에 침을 뱉기엔 아직 이르다

[월요아침]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7-28 13:37
  • 신문게재 2013-07-29 20면
  •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내가 다녔던 신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식당에서 길게 줄을 서야했다. 학생 수에 비해 식당이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동료 한 사람은 가끔 식당에서 줄을 서지 않고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는 식당부엌에서 밥과 고추장을 들고 나와, 맛있게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그가 부엌에 들어가면서 “엄마, 나왔어!”라고 외쳤기에, 우리는 그의 어머니가 식당부엌에서 일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의 특권을 부러워하며, 비빔밥을 뺏어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성탄절 전날, 나는 학교정문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양손에 선물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급히 가던 중이었다. 나는 그가 교수님들에게 선물을 드리려 한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곳은 교수연구실이 아닌 식당부엌이었다. 그리고 그를 배웅하는 식당할머니들 손엔 방금 전 그가 들고 있던 선물가방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답하길 꺼리던 그는 나의 집요한 추궁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년간, 용돈을 모아, 식당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들께 양말과 장갑을 성탄절 선물로 드려왔던 것이다. 학교에서 철저히 소외되던 식당 할머니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정성껏 섬겼던 그를, 할머니들은 가끔씩 부엌으로 불러 양푼에 밥과 고추장을 담아주는 것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등록금을 제때에 낸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내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그는 비빔밥의 '특권'을 누릴 만 했다.

그와 관련된 일화가 또 하나 있다. 10년 가까이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을 돌봐온 것이다. 그들이 소년원에 있을 때 알게 됐고, 출소 후엔 사회에 적응하도록 계속 도움을 줬다. 그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자신의 지하단칸방에서 재우고, 틈틈이 그들을 만나 용돈을 주고 상담을 해주며, 그들의 사진을 보며 매일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을 걸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모두 깨끗한 수건이 되고 싶어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더러운 걸레이기에, 저 아이들의 몸에 묻은 배설물을 닦아 줄 수 있지요. 제가 너무 깨끗하면, 그들의 오물을 절대로 닦아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그냥 걸레로 살래요.” 그는 지금도 스스로 걸레가 되어, 소외된 약자들의 오물을 열심히 닦아주고 있다.

외국인학교·국제중학교 비리사건에 대기업간부와 유명연예인들이 관련됐다는 소식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유력 집안의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이 조작되고 뒷돈이 거래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히, 영훈·대원국제중의 경우, 서울시교육청이 두 학교에 대한 감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사건에 깊이 연루된 영훈국제중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정말 누군가의 표현대로, 비리가 비극이 된 것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부정입학생으로 지목됐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해 마련된 '사회적 배려자'로 삼성가의 자손이 입학했으며, 그 과정에서 성적을 조작하는 부정이 저질러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 부회장은 '사과문'을 내고 아들을 자퇴시켰다. 삼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 기득권층의 부끄러운 실체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또 하나의 씁쓸한 해프닝이다.

돈과 권력 앞에서 정의와 양심마저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미 많이 가졌고 충분히 누리고 있음에도 만족과 절제를 모르는 그들의 탐욕과 특권의식이 무섭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그들과 결탁해 학교와 교육마저 자본의 도구, 권력의 하수인으로 변질시키는 이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을 소외된 이웃들과 힘껏 나누고, 스스로 걸레가 되어 약자들의 오물을 닦아주던 한 소박한 신학생의 이야기는 아득한 신화와 전설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이웃의 멋진 이야기다. 오늘도 가진 자들의 오만과 횡포로 가뜩이나 버거운 삶이 더욱 힘들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선한 이웃들의 작은 사랑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웃으며 하루를 살 수 있다. 세상에 침을 뱉기엔 아직 이르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비빔밥이 많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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