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를 받은지 38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이완규씨. |
대전에서 열린 재판에서는 처음이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림)는 25일 박정희 정권 때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긴급조치'(일명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된 이완규(59) 전 한전원자력연료 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기소된 이씨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유죄 판결을 내렸던 대전지법이 40여년만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검찰조차 무죄를 구형했다.
이런 사연이다.
이씨는 1975년 6월 7일 오후 11시경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한 무리에게 연행됐다. 당연히 이유는 몰랐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열흘 동안 고문은 이어졌다. 묻는 말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종잇장에 지문을 찍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후인 7월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이다. 충남대 기계공학과 73학번인 그는 서울 홍익대에서 열릴 예정인 전국대학 기계공학도들의 체육대회(박정희 유신정권 규탄대회 성격)가 문교부의 검열 때문에 불허됐다는 얘기를 퍼뜨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 내용을 담은 서신을 부산에 있는 지인에게 보냈다가 당국의 검열에 걸렸기 때문이다. 연행과 고문, 투옥의 이유는 이뿐이다.
법정에 선 이씨는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세상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무죄 판결이 내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유신체제에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당시는 국가적으로 중대하거나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표현과 신체의 자유를 억압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법”이라고 밝혔다.
이종림 재판장은 “시련과 옥고를 겪은 피고에게 사과하면서 무죄판결이 고통과 위로,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재판부도 최선의 역할을 다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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