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를 끝낸 대학생은 이미 여름방학에 들어갔지만 지난 주 중ㆍ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이번 주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학생들에게 있어 한달여간 이어지는 여름방학은 재미이상이다. 물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재수생과 고3 수험생들에게는 여름방학만큼 혹독한 시련의 시기는 없을테지만 말이다.
여름휴가, 일명 바캉스. 프랑스어인 '바캉스(vacance)'는 주로 피서나 휴양을 위한 휴가를 뜻하는 말로 흔히들 여름휴가로 통한다.
이러한 여름휴가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찜통같은 삼복더위와 사람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계곡을 찾아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테고, 아니면 발디딜틈도 없이 북적대는 해수욕장을 찾아 사람구경이 곧 여름휴가의 백미라 여기며 즐기는 이도 있을테다.
호젓하게 더위를 피해 여름휴가를 즐기든, 이열치열로 북새통 휴가를 즐기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히 바캉스를 제대로 즐기자는 데 누가 토를 달까.
하지만 여름휴가철만 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에 앞서 한바탕 난리로 시작되는 휴가문화를 언제까지 지켜봐야하며, 언제까지 참아가며 휴가를 보내야 하느냐는 점은 문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1주일여동안 즐기는 여름휴가는 누구나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맘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면 과연 얼마 만큼 만족스러웠는지는 시쳇말로 안봐도 비디오다. 첫 날부터 짜증스런 교통혼잡에 소위 성수기를 맞아 단단히 한 몫 잡을 태세로 부르는 게 값인 바가지 요금까지 피서는 커녕 분노 대폭발 일보직전이다.
상상해보라. 피서지 길목마다 차량홍수로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에 겨우겨우 비집고 도착하니 이제는 사람도 겨우 지날 수 있는 불법주정차 천지의 피서지 상황. 절로 진저리가 날 뿐이다.
여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줄 뻔히 알면서 뒤차는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며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꼴사나운 운전자, 주차안내는 이미 포기하고 연신 호루라기만 불어대는 주차안내원, 길가는 사람 막아서서 호객행위에 열 올리는 식당가, 어디서 거나하게 술 마시고 대놓고 추태와 고성방가를 일삼는 이 모두가 한여름 휴가지의 일상인데 만족스런 휴가는 꿈일 수 밖에…. 안 그런가!
우리의 여름휴가는 왜 이래야 할까. 뭐가 잘못됐을까. 괜히 있어 보이는 척한다고 여름휴가를 '바캉스'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바캉스 문화를 그릇되게 받아들인데서 시작한걸까? 그것도 아니면 문화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서 그런 것일까?
분명한 것은 원조 바캉스 문화는 절대 아니란 것이다. 원조 바캉스는 흔히들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비유한다. 6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바캉스철만 되면 유럽의 도시들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대신 이방인들이 그 도시를 점령(?)한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영국과 독일인, 독일은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프랑스, 스위스는 벨기에, 러시아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핀란드 등 유럽 전역이 뒤섞인다. 그리고 각 나라별로 바캉스철만 되면 우리와 반대로 물가가 상대적으로 내려간다는 점이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바가지 상혼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자국민에 대해서만은 덜하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원조 바캉스는 휴가를 떠날 때 꽃씨를 뿌려 집으로 돌아올 때쯤에는 꽃을 피워올만큼 여유자적으로 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 우리의 문화수준때문? 역시 절대 아니다. 유럽문화에 훨씬 앞서 우리가 더욱 고고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음은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니 말이다.
결론은 사회적 자본의 결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전시에서 올초 화두를 던지고 본보에서 줄기차게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캠페인 기사를 게재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모습이 아직은 미미하다.
사회적 자본은 바로 사람의 향기다.
믿음을 주고, 신뢰를 받고, 사랑과 배려를 주고, 봉사를 하는 사람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자본은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한 가지 실천이 중요하다.
사회적자본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알차고 보람있고, 즐겁고 신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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