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눈앞의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 엄마는 딸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긴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장면을 뒤로한 채 엄마는 잔혹하게 살해되고, 살인마는 무죄가 되어 풀려나고, 딸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엄마의 법은 허상이었나. 현실속의 법은 결코 엄마를 잃은 딸에게 복수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면 법 없이 살아가는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법이란 것이 얼마나 불리할 수 있는지, 혹은 법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죄추정, 합리적인 원칙 다 개소리다. 피해자가 돼보니 변호사는 개자식이고, 나 역시 그 개 같은 변호사다.”
철저하게 법에 배신당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법정을 폭파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울컥했던 시청자들이 꽤 많았으리라 추측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의거하면 '모든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가지며 국가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과 원칙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성역과 예외 없이 똑같아야 한다. 그럴 때 법은 신뢰를 얻고 권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또한 양면성을 지닌 법은 나쁜 자들을 벌할 수 있지만 때때로 나쁜 자들이 빠져나갈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지난주 전국의 방송과 신문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제2의 오원춘' 사건을 떠올려 본다. 범인은 이제 갓 만 18살을 넘긴 심모(19)군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A(17)양을 성폭행한 뒤 목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수십 조각으로 훼손해 변기에 버리고 친구에게 문자메시지와 SNS의 글을 남기는 등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았았다. 이 사건은 범죄전력과 정신 병력이 없는 10대의 엽기적인 유기 행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와같은 뉴스를 접할 때 가장 먼저 피해자의 엄마의 심정부터 생각해 보게된다. 도무지 상상이 안간다. 어린 피의자는 아무리 범죄가 잔인해도 소년법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형을 구형하지 못한다. 길어야 15년쯤 후면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될 피의자의 모습이라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끔찍한 일일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사례의 잔인한 피의자가 국선변호사와 같은 법의 도움을 받아, 무죄추정의 원칙(모든 피의자나 피고인은 무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의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시스템에 화가나고,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거대 로펌의 힘을 빌리거나 증거를 조작해 유유히 빠져나가는 이시대의 '고무줄 법'에 분노한다.
지난 17일은 대한민국의 존재 근거인 헌법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 개천절 같은 다른 국경일이 일제강점기 시기의 사건이나 독립운동과 직접 이어져 있다면, 제헌절은 식민지 시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기원을 둔 유일한 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는 요즘시대에 신호등마다 서는 운전자를 미련하다고 탓하지 않고, 정직하고 헐뜯지 않는 사람을 고집스럽거나 융통성이 없다고 무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범인을 놔준 개떡 같은 법이지만 또 그 원칙이 혹시라도 무죄일 수 있는 피고인을 살릴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원칙이다. 법이 있어 더 안전하며, 분쟁을 최소화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싶다.
법이든 정의든 진실이든 그야말로 극히 사소한 것부터 지켜지기를…. 가진 계층과의 송사나 부당한 판결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든든한 법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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