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백형께서 교육도시 공주 이인에 개업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인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형님댁에서 줄곧 중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의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한지의사제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자격을 갖춘 의사들이 부족하여 전국적으로 의료 공백이 생기게 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시험을 통하여 면 단위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병원 개업 자격을 주는 제도였다. 백형께서는 당시 사립 의학강습소가 있던 평양에 유학하여 공부를 마치고 논산의 천성당의원에서 수련과정을 밟던 중에 독자적인 개업을 위하여 한지의사시험에 응시하셨던 것이다.
대전청사의 국가기록원에서 복사해온 형님의 면허신청서 관련서류는 모두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당시 신청서를 접수받은 충남도 위생과에서 신청자의 자격과 해당 지역의 여건 등을 조사하여 개업의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조선총독부 경무국 위생과에 허가를 상신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면허신청 사본을 받아보는 순간 나는 20년 전 돌아가신 형님을 다시 만난 듯한 상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지개업의사면허신청서는 △신청서 △자필 이력서 △수련병원장의 수련증명서 △의사시험 합격과목증명서 및 학설시험채점표(學說試驗採點表) △호적등본 △출원지역 상황 △종합판정 등 모두 7개 파트로 되어 있었다.
당시 한지의업시험의 시험과목은 내과·외과·산과·안과·약물학 등 5과목으로 각 과목별로 학설(學說, 이론)과 실지(實地, 실기)시험을 치렀고, 시험문제와 함께 형님이 자필로 작성한 답안지가 맨 뒤에 첨부되어 있었다. 시험 평가위원은 충청남도 위생업무를 담당하는 위생기사(서기) 1명, 도립의원 의관 3명, 도립의원 의원 1명 등 총 5명으로, 모두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을 보니 도립의원 의관 3명은 모두 일본인 의사였다.
출원지역 상황에는 당시 해당 지역이었던 공주군 목동면과 탄천면의 가구 수와 인구수를 조사하고 의료기관 현황, 주민들의 이용편의도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한지의사가 필요한 지역임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서류 내용은 물론 그 과정이 한마디로 치밀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70년여 전의 행정체계가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디테일'이라는 관점에서 아직도 우리는 일본보다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일본의 경제적 침체와 함께 독도 문제, 아베정권의 몰염치한 과거사 부정 등으로 우리의 대일(對日) 감정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일본 여행도 꺼리는 등 일본에 대한 열기가 식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중국일본학부에서도 학생들의 일본 유학에 대한 인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일본어 전공 교수님들이 염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본을 기피하고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나온 역사나 또 미래를 보더라도 일본과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며 '현실'인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일본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때, 즉 '지일(知日)'만이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백형의 의사면허신청서에서 일본의 체계적인 행정시스템과 기록 보존에 대한 철저한 관리시스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일본으로부터 또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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