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예전에도 이런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였나 보다. 40년 전에 들은 이야기다. “어느 홀로된 노모가 자식들이 장성하자 영감님이 남겨놓은 재산으로 금밥그릇과 금수저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선언했다. 마지막에 자신을 봉양하는 자식에게 주겠노라!” 그뒤 결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사마천의 사기 '육가열전'에 나온다. 한고조 유방 사후 여후가 정치를 전단하자, 육가는 자신의 전재산을 나누어 다섯 아들에게 200금씩 주고 그것으로 생업을 삼아 살도록 하였다. 자신은 남은 재산으로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와 예능에 능한 시종 10명, 100금의 가치가 나가는 보검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너희와 약조를 하마. 내가 너희 집에서 묵는 동안 너희는 내 사람들과 말에게 술과 음식을 주되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 나는 열흘마다 집을 바꿔가겠다. 내가 뉘 집에서 죽으면 보검과 수레ㆍ말ㆍ시종들은 그 집에 주겠다. 1년이면 다른 손님 댁도 왕래해야 하므로 많아야 두세 번을 넘지 않을 것이니 때마다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오래 있어도 나에게 싫증을 내지 말거라.'
물론 그가 여후시대에 탄압을 피하기 위하기 위한 눈속임 수단으로 한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요즘상황에서 육가처럼 한다면 자식들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효자라면 자신이 모시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리겠지만.
법률가인 나에게 현대적 변용으로서 “금밥그릇”이나 “보검”역할을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유언장제도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전 38세의 케네디 2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 그에게 유언장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도 평소 유언장을 작성해 둘 정도로 서양에서는 유언장제도가 일상화되었다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 유언장에 대하여 묻는 사람이 늘었다. 그만큼 우리사회도 발전하여 재산도 늘었고 사고방식도 선진화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한편으로 부모의 재산을 탐하는 자식은 결국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깨치고 자신의 노력을 통해 무언가 이루어가는 성취감이야말로 젊은이의 특권이고 보람이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간에 때로는 손쉽게 가르쳐 주고 손쉽게 물려주는 것이 제자 또는 자식의 즐거움을 빼앗고 도리어 시들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정답을 안다 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은혜일 수 있다.
당나라 선승 향엄지한(香嚴智閑)이 스승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오히려 답을 물어보다가 거절당한 뒤 그 궁금증을 품은 채 만행하다가 어느 날 기와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이 왔다. 그는 감격에 겨워 스승이 계신 쪽을 바라보며 절을 했다. “가르쳐 주시지 않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진정한 깨달음을 맛본 것이다.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은혜라면, 물려주지 않는 것은 더 큰 은혜일 수 있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식 스스로 독립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크나큰 은혜이다.
하지만, 굳이 자식들을 위하여 소나 말노릇을 하면서 큰 재산을 형성해놓으셨다면 부디 자손들의 평화를 위하여 유언장이라도 장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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