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 |
여기에 서울연고 두산의 유희관 투수가 '느림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어 프로야구에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유희관 투수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올해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각 팀의 주목받을 선수 명단에도 끼지 못했다. 중간계투요원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도의 선수였다.
그런 그가 궁여지책으로 선발진에 차출된 후 두둑한 배짱으로 상대팀 초특급 투수들과 견줘 승리함으로써 일약 신인왕 대열에 합류했다.
5승 1패. 화려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유희관은 두산의 선발투수 중 유일한 좌완으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원이 됐다.
전광판에 78km 찍힌 슬로커브 구속.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던지는 구속정도에 불과하다. 속구 구속이 130km 중후반대임을 감안한다면 구속의 차가 크다. 거기다 좌완 프리미엄과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폼은 타석에 들어선 상대 선수들을 허둥대게 만든다.
야구인들은 그를 보면 '한화의 전설' 송진우 말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칼날같은 제구와 완급조절, 느린 볼을 던지지만 제구가 뛰어나 상대타자들을 괴롭히는 모습이 송진우와 닮은꼴이다.
유희관은 과거 1군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직구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하는 바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반전됐다. 그는 슬로커브로 두산의 좌완고갈과 부진한 선발진에 단비역할을 하면서 두산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는 이유가 있다. 에이스급 투수들과 상대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유희관은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해 9-2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유희관은 이날도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KIA 선발은 광속구 투수 소사로 어떤 구종도 유희관의 직구 보다 빠를 정도로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초반 승부에서 당당하게 소사와 맞서며 두산 벤치에 희망과 믿음을 심어줬다.
유희관이 최근 상대 한 투수들만 봐도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삼성의 토종 원·투펀치 장원삼·윤성환과 KIA의 에이스 김진우·소사 그리고 외국인 투수 밴헤켄·옥스프링 등 국내 프로야구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견줬다. 유희관은 이들의 이름값에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보여줬다. 그렇기에 그의 역투가 더욱 빛나고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유희관이 이름값과 구위에서 이들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흔들림 없이 자기 공을 던지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 야구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요즘 대기업에 큰 소리 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삼성·LG는 LED용 핵심 부품을 만드는 S사에 “우리에게 물량을 더 많이 배정해 달라”며 목매고 있다. 이 회사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핵심 기술을 특허조차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또 다른 S사도 국내 대기업이 횡포를 부리자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미국·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뛰어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자 대기업들이 머리를 조아린다고 한다.
오랜 경기침체에다 구조조정으로 건설사들이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때를 같이해 스스로의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부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고 토목이나 해외사업 등 사업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자체 기술력을 갖도록 함은 물론 전문인력 확보에 나서는 것도 중견기업이 탄탄한 존립기반을 갖추기 위한 요건인 것이다.
국내ㆍ외적으로 경제가 어렵다. 우리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유희관 투수와 같이 강자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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