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일본의 IT 분야 지적 리더인 우메다 모치오는 그의 저서 『웹 진화론2』에서 '지향성의 발견'과 '롤 모델 사고법'을 언급한다. 지향성의 발견은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접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자기와 궁합이 맞는 신호를 포착하는 것이다. 롤 모델 사고법은 단순히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향성을 세세히 정의해가는 프로세스다. 이를 실천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청춘의 고민을 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 수업 과제로 각자 자기 롤 모델을 찾아 인터뷰하고 글과 사진으로 담아 제출하라고 했다. 통상 롤 모델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저명인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선택한 롤 모델은 백인백색이었다.
물론 JTBC 주철환 대PD와 '위대한 탄생2' 출신 가수 50kg의 박민, 김경 칼럼니스트처럼 유명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조세피난처 보도로 세상을 뜨겁게 달군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NHN NEXT 김평철 학장 같은 핫 인물도 포함됐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생들이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친구, 선배 등 주변에서 롤 모델을 찾았다.
한 학생은 직업과 인생의 롤 모델을 놓고 고민하다 후자로 방향을 잡고 어머니를 택했다. 늘 존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나 당신은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이유에서다. 세 번 거절당했다 한다. 삼고초려한 유비가 된 심정이었으리라.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어머니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 학생은 어머니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알게 된지 고작 3개월밖에 안 된 친구를 롤 모델로 선택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자기 삶에 가장 큰 자극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보통 밤 11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의 하루는 남보다 3시간 많은 27시간인 셈이다. 누군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쉬운 일일까. 그럼에도 친구는 즐겁다 말한다.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일이기에. 그에게 일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인 것이다. 이 학생은 자기 친구처럼 '내일'을 위해 '내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학생들은 평소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한 학생은 작은 핫도그 가게를 예의주시했다. 늦은 시간 늘 한 남자가 앞치마와 모자를 흐트러짐 없이 착용하고 창가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을 다녔다. 안정된 삶이었으나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회사생활에서 가치를 찾긴 어려웠다. 돈을 벌면서 의미 있게 살 수는 없을까. 핫도그 장사를 시작했다. 큰 벌이는 아니지만 핫도그를 팔 때마다 일부를 적립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거창한 의협심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나누며 사는 게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어떤 학생은 학교 주변 한 카페의 대표를 롤 모델로 정했다. 남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서울에서 일하다 친구와 죽이 맞아 카페를 창업했다. 그냥 하고 싶었단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내가 어떻게 재밌게 살까를 생각했지.” 그는 보통 사람들 마냥 평범하게 사는 방법도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이길 바랐다. 그에게 삶의 기준은 오직 행복이다.
평범한 사람도 누군가에겐 롤 모델일 수 있다. 사회적 성공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다. 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건 자기 의지에 따라 자기 가치에 신념을 갖고 미지의 세계일지언정 도전적으로 개척하는 장삼이사의 행보였다. 그리고 보면 롤 모델은 내 밖이 아닌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사람이 희망이고 '작은 것이 큰 것이다(Small is the new 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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