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는 건조한 사막지대나 추운 고산지대 또는 늪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우리나라 토양은 산성토양일 뿐만 아니라 적당한 온·습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미라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한다. 최근에 이장하는 가운데 발견된 우리나라 미라들은 다른 나라의 미라들과 달리 특수한 환경에서 찾아진다. 주검을 매장할 때 외부의 해충이나 나무뿌리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두터운 관을 쓰고 그 위에 회를 다져 굳혀서 자연스럽게 외부공기와 차단되었기 때문에 미라 상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아직도 미라로 진행되는 단계의 미라들인 것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미라들을 현대의학진료 장비들로 조사·연구를 하면 미라의 생존 당시 습관이나 질병, 치료물질, 기생충, 의료처치방법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분석 자료들은 문헌이나 유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실을 담고 있어서 의학이나 질병의 역사뿐만 아니라 생활사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 미라가 입고 있던 옷이나 그 사이에 같이 묻혀 있는 편지 등을 보면, 요즈음 몇백년 쯤 뒤에 열어 보자고 요즘의 여러 가지 기념될 만한 물건을 담아 묻어 놓는 타임캡슐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라는 한 개인의 인생역정을 넘어 지금은 잊혀진 생존 당시의 여러 가지 정보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라는 우리에게 인간 존엄과 생명존중, 조상숭배와 효의 가르침도 주고 있다. 주검의 처리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점이다. 죽어서도 살았을 때와 똑같이 삶을 영위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이 있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저승은 없었을 것이다. 주검은 주검 그 자체로 취급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승이 있고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살아간다는 믿음과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관념들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주검을 산 사람 이상으로,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 까닭에 미라를 보면 산 사람도 입기 어려웠을 옷과 신발 등을 갖추고 지극히 편안한 모습을 띠고 있다. 미라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존중·생명사랑의 깊은 뜻을 새겨보자.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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