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식 대전시민아카데미 대표 |
정치는 이러한 사회적 균열 또는 적대를 비폭력적 방식으로 해소해가는 하나의 영역이며, 현대의 정치는 이를 제도를 통해서 실현하고 있고, 이러한 정치제도의 핵심은 정당과 선거, 그리고 법이다.
영역과 제도로서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활동하는 양식은 언어를 통해서다. 모든 정치적 이해와 주장, 비전은 언어를 통해서 주장되고, 언어를 통해서 경쟁하고, 언어를 통해서 정리되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로 이행한다. 흔히 정치가 말싸움이고 말의 잔치라고 이야기할 때, 이러한 표현은 일면 정치의 본질과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의 질과 수준은 정치공간에서 사용되고 주장되는 말들, 즉 언어의 형식과 내용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개개의 사람들과 집단 사이의 갈등, 사회적 균열 또는 적대를 해소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영역이라면 정치적 언어는 이러한 갈등, 균열, 적대의 표출과 해소를 그 내용과 형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즉 정치에 있어서의 언어는 사람들과 집단의 사회적 삶의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정치에 있어서의 언어는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 주고, 고단한 삶을 보다 고양된 삶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의견을 중심으로 전개 되어야 한다.
삶의 실재와 가능성을 내용과 형식으로 하지 않는 언어는 정치적 언어가 아니다. 하물며 사실에 기초하지도 않고,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을 중심으로 나뉘어지는 언어는 정치적 언어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
거짓을 바탕으로 정치적 의견이 형성되고 나뉘어서 집단이 만들어지고, 그 행위가 사회화, 정치화 될 때, 정치적 동력의 순기능이 되어야 할 사회적 균열은 이데올로기적 균열로 변질된다. 이러한 갈등의 이데올로기적 전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증을 갖게하여 비정치 또는 반정치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결국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본질이 타자의 부정과 대상화에 있다면 이러한 갈등의 이데올로기적 전화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폭력의 결과는 20세기 전후의 인류의 역사가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정원 사태에서 생각해 보아야할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의 영역에 진입해서는 안될 언어들이 정치적 언어로 둔갑하여 대중의 정치의식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사법적 사실관계의 규명과 처벌의 문제이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날 때 사회적 삶에서 정치의 의미와 중요성이 다시 획득되어지고 시민사회의 재정치화로서의 새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언어가 될 수 없는 말들을 아무런 자각없이 정치적으로 인용하고 사용할 때, 만천하에 드러난 거짓말을 중심으로 정치적 의견을 나눈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이미 정치적 인간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인간이 된다는 것을 숙고해야할 것이다.
'수구꼴통' 또는 '좌빨' 이라는 말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나누고 사용할 때, 우리 모두는 이미 정치적 인간이 아닌 정치적 좀비가 되어있음을 처절히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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