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효율 면에서 보면 민선 5기 지방자치단체의 '독서진흥' 정책에는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다. '책 읽는 도시'라는 강박증이 책 읽는 습관, 책 고르는 눈, 깊이 읽기로 커가는 독서력을 방해했다. 대전 몇 권, 충남, 충북 몇 권 식의 독서량 순위에 대한 각성이 더 독(毒)이 됐다. 토건국가 아닌 문화국가에 미래가 있다는 인식은 약에 쓰려야 없었다.
제일 실책은,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인 '취미' 영역에 '독서'를 놓아 둔 점이다. 비독서(non-lecture)가 미덕이 되고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된 듯 여겨지는 세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같은 '안내서'도 있다. 검색하면 나오지만 읽어봤다.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 교수는 강의실에서 인용한 “그 책들은 대부분 내가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라고 전혀 거리낌없이 고백한다. 쓸데없는 책 같아도 나름 재미있다. 독서에 대한 첫 번째 두려움이 '독서의 의무', 두 번째 두려움이 '정독해야 할 의무'라는 대목에는 밑줄을 긋는다.
경험했겠지만 의무가 되면 왠지 싫다.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는 책을 멀리한다. 이 책 56쪽에서는 발레리를 인용, 진정한 독자에겐 “어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다른 모든 책들이 중요하다” 했다. 이것을 1도시 1책 읽기(원 시티 원 북) 운동에 굳이 결부시키면 “보다 폭넓고 어떤 구성에의 참여를 망실케 할 위험성”과 만난다. 단 한 권 밖에 안 읽은 사람(한 권도 안 읽은 사람보다 무섭다)을 경계하라는 디즈레일리를 책에 등장시켰으면 좋을 뻔했다.
한 권의 책이 습관의 도화선이지만 거기에 집중하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연쇄독서를 가로막는다. 정신의 균형에서 편독(독서편식)은 편식만큼이나 좋지 않다. 선호되는 이런저런 콘서트, 선포식은 행사로서 의미를 넘어 지속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기존 독서 캠페인이 극복할 딜레마를 거론하고자 할 뿐이다.
지자체도 지금부터는 독서진흥을 정책다운 정책으로 재분류할 필요가 있다. 작은 문고, 마을 도서관과 북카페 등 올망졸망한 생활밀착형 도서관을 최대한 만드는 게 상책이다. 독서강국 미국의 공항 파라다이스숍도 차용할 만하다. 출발지에서 책을 사서 읽고 목적지에서 반값에 처분하거나 새로 구입할 수도 있게 한다. 대전도시철도 문고 활성화가 한계에 그친 부분은 아쉽다. 습관이 전제가 되는 독서는 효율적인 정책이며 투자여야 할 것이다.
개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는 우선 폼 나는 책장부터 살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당송팔대가 왕안석도 '무즉치서궤(無卽致書櫃, 돈 없으면 곧 책궤라도 갖추라)'라 했다. 책 모으기도 창조적 습관에 도움된다. 나 자신의 습관은 고 육영수 여사가 기증한 새싹문고에서 비롯됐다. 플라타너스 그늘 지나 학교 도서관을 거쳐 관사에 들러 교장선생님 딸을 보는 일은 소년기의 큰 기쁨이었다. 책 목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버릇은 그때 생겼다. 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고르는 일과 신간서적을 사는 즐거움은 유사하다.
여기서 정치권이 독서 법안을 만들고 지자체에서 독서문화진흥 조례를 만들수록 독서 욕구가 떨어지는 이유가 조금은 설명되길 바란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불요불급한 토목공사 예산을 줄여 동네 도서관 짓기에 쓰길 제안한다.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다. 주민 자원봉사로 운영하면 바로 풀뿌리 독서자치다. '역세권'과 같이, 걸어서 10분 거리의 '북세권'이 형성되면 그 이상은 없다. '독서자치', '북세권'은 칼럼용으로 방금 급조해낸 말이다.
서울 행사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독(讀)한 습관' 특강을 시작했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읽기의 즐거움' 슬로건이 와 닿는다. 이제 감히 여름을 독서의 계절로 주장한다. 도서 매출도 여름(7~9월), 겨울(12~2월)이 연평균 매출보다 높다. 올 여름은 읽는 사람, '독(讀)한' 사람이 되자. 녹취록 진실게임에 휘말린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그런 것처럼 미래를 먹여 살리는 원천 콘텐츠가 책 속에 숨어 있다. 창조독서는 요즘 유행하는 창조경제까지 생산 가능한 지식과 지혜의 발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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