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늙는 법은 없어도 잘 늙는 법은 있다.
'김현중'이 발신인인 '교류메일'이 도착해 아주 잠깐 한류스타 가수 김현중인가 했다. 열어 보니 얼마 전까지 대전국제교류센터 소장을 지낸 분이었다. 외교관 출신답게 '교류'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대전 흑석동에서 “귀농 선배들과 교류하며” 산다는 그는 경제적으로는 아직 생산가능인구(15~64세)에 속한다. 법적 노인(65세)엔 약간 미달이다.
하지만 분명한 '인생 2모작'이다. '돈 없이', '일 없이', '혼자' 장수하는 무전장수(無錢長壽), 무업장수(無業長壽), 독거장수(獨居長壽)가 두려움의 대상인 세상에서 그만하면 부러움 살 만한 조건이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앞으로 40년…”이란 카피로 유병장수(有病長壽)를 부각하는 광고가 있는데, '아픈 채' 장수하는 것 역시 불안하다.
아픔이 생존의 조건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물론 있다. 샤론 모일렘은 『아파야 산다』에서 빙하기의 인류가 당분으로 어는점을 낮춘 것이 당뇨로 나타났다든지, 흑사병에서 혈색증 환자들이 살아남은 예를 들며 병자생존(病者生存)을 말한다. 군데군데서 수긍이 안 가지만 '늙음은 생명 유지를 위한 구식화'라는 표현에서 설익은 희망을 찾는다.
구식 모델을 처분해 신형 모델이 등장할 여지를 터준다는 것이다. 이보다 서글픈 비유도 나온다. 가령, '잘 익은 열매는 따기 쉬운 반면 덜 익은 열매는 따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야 산다는 역설이 일부 맞는다 해서 축복은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720만명이 노년기로 진입할 시점에는 더구나 축복일 수 없다.
농촌에 가면 45살 '청년'이 청년회장을 맡기도 한다. 법적인 청년의 상한은 대개 29세다. 400여명 되는 부여군 이장 중 10%가 70대 노인이다. 나이에 0.8을 곱해야 진짜 나이(55세면 44세)라는 말도 있다. 중요한 건 평균수명보다 건강수명이다. 현재의 건강수명은 대전 72.9세, 충남은 71세, 충북은 70.3세로 집계된다. 대전은 아프고 다친 기간을 뺀 건강수명이 서울 다음으로 길고 병치레(6.36년)가 짧은 도시로 분류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노인인구 12%대의 고령화사회인 한국은 5년 후 노인인구 14%의 고령사회, 2026년엔 20%의 초고령사회가 된다. 충남, 경북, 전남, 전북, 강원은 이미 고령사회가 됐다. 안정된 노후를 위한 국가의 정책적 강화와 함께 개개인도 신뢰, 열정, 규칙, 사랑, 꿈을 잃지 않고 늙어갈 채비를 해야 한다.
행복수명이라도 해도 좋고 늙어가는 기술이라고 해도 좋다. 주말에 대전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경기도립극단의 연극 '늙어가는 기술'이 던진 답은 뻔하면서 시시하지 않다. 썰렁하게 들리지만 '늙어가는 것이 늙어가는 기술'이었다. 청춘기에 만난 『사랑의 기술』이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이 아니던 것처럼 인생 후반기에 마주친 '늙어가는 기술'은 늙음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은 아니었다.
귀향한 김 전 소장처럼 우편함에 알 낳은 딱새와 '교류'하며 늙는 방법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다. 늙어가는, 즉 '계획적 구식화' 길을 걷는 누구에게나 다같이 가능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최충식·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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