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좌·우 이분법에 국민은 얼마나 놀아났던가. 해방 68년이건만 아직도 질곡의 이념을 우려먹는다. 대한민국 건국 전후 좌우익으로 편 가르더니, 1960년대는 혁신으로, 1980년대 후반에는 진보로, 요즘은 좌파로, '종북'으로 매도한다. '좌파' '우파'라는 말이 태어난 지 220년도 넘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정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신흥자본가들이 나라를 경영할 국민공회를 창립한다. 귀족 중심의 왕당파와 부르주아 중심의 공화파로 나뉜다. 왕당파는 안정을, 공화파는 혁신을 부르짖는다.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국민공회가 열린 장에서 국왕 오른쪽엔 왕당파가, 왼쪽엔 공화파가 나뉘어 자리한다. 여기서 '우파' '좌파'란 말이 생겼다.
우리 전통의식에선 좌존우비(左尊右卑)다. 왼쪽을 오른쪽보다 존귀하게 여겼다. 그것은 남존여비와 일맥상통한다. 좌는 양(陽) 우는 음(陰)으로 여겼다. 남자가 수태되는 위치는 자궁의 왼쪽이요, 여자가 수태되는 곳은 오른쪽이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임신한 여인은 일부러 왼편으로 누웠다고 한다. 조선조 정승 자리도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 앞이다. 좌가 우보다 높은 개념이다. 좌측이 상위이라는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우측이 더 상위라는 개념도 만만치 않다. 제사상(祭祀床)에서는 우측이 우선한다. 제주가 제사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했다. 우측 음식이 좌측 음식보다 고급이라는 거다. 생선이 육류보다 몸에 좋으니 우측에 놓아 먼저 드시라는 뜻이다. 자리의 변동에서도 우가 좌보다 앞선다. 현직보다 높은 벼슬로 올라감을 '우직(右職)', 못한 자리로 내려감을 '좌천(左遷)'이라 하지 않던가.
성경에서도 오른쪽을 유난히 강조한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失足)케 하거든 빼어 내버려라(마태복음5:29)”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태복음5:39)”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사도신경)”
좌·우 경중 따지기는 부질없는 짓이다. 좌·우는 분리가 아니다. 한 몸이다. 좌익(左翼)은 왼쪽 날개요, 우익(右翼)은 오른쪽 날개다. 새는 왼 날개와 오른 날개를 번갈아 움직이며 날아간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 자동차에도 양쪽에 깜빡이가 있다. 오른쪽 깜빡이만 있다면 어찌될까. 목적지에 제대로 갈 수 없다. 이리저리 깊이 생각함을 좌사(左思)라 하지 않고, 좌사우고(左思右考)라 하지 않던가. 우가 있으면 좌도 있어야 한다.
한자 최초 자전 『설문해자』에서는 '左·右는 모두 돕는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양쪽을 구별하고자 좌(左)에는 工을, 우(右)에는 口를 덧붙였다. 좌에서 '工'이란 무언가? 공부(工夫)에 工이다. 지식을 쌓으라는 거다. 머리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우에서 '口'는 왜 붙은 걸까? 입 구(口)다. 먹어야 산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라는 거다. 좌는 소프트웨어(정신)요, 우는 하드웨어(몸체)다. 정신과 몸체는 하나다. 좌가 우를 등돌리면 어찌 되는가. 굶을 수밖에 없다. 우가 좌를 무시하면 꽝이다. 좌ㆍ우는 등돌림이 아니다. 보완이요 상생이다. 왼 귀는 사랑의 속삭임을 잘 듣고, 오른 귀는 참 소리를 잘 듣는다. 콧구멍도 왼쪽은 향기를 잘 맡고, 오른쪽은 냄새를 잘 맡는데 서너 시간마다 숨쉬기 임무를 교대한다. 왼 눈은 원근을, 오른 눈은 모습을 잘 살핀다. 왼손은 감성적 일을, 오른손은 힘든 일을 담당한다. 왼발은 방향을 잡아주고, 오른발은 추진력을 발산한다. 한쪽이 없으면 어찌될까.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여(輿)가 우(右)라면 야(野)는 좌(左)다. '수꼴'이니 '좌빨'이니 매도하지 말라. 오른손이 왼손을 두들겨 패는 꼴이다. 맞잡으면 악수가 되느니라. 딱딱 맞추면 박수가 되느니라. 국정원 선거개입에 물타기 말라. 북방한계선(NLL)으로 맞불이라니…. 그건 국기문란이다. 오죽하면 고교생도 시국선언 나설까. 오천만이 손뼉칠 날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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