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질병관리본부는 경쟁 입찰을 통해 연구에 필요한 시약을 구매해야 함에도, 연구원들은 절차를 무시했다. 자신들이 임의로 특정 납품업체를 선정해 시약을 납품받았다. 이른바, '선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구원들은 선납업체를 선정해 준 대가로 금품을 받았고, 납품업체 또한 선납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약을 납품할 수 있었기에 연구원들과 납품업체 사이에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약 구매의 원칙적 절차인 입찰은 선납된 시약 대금을 정산해주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고, 이는 이번 수사에 착수하기 전까지 수년간 계속돼왔다.
시약 검수기능의 부재도 문제로 꼽힌다. 2012년 4월 이전까지 질병관리본부에는 입찰 품목의 납품 여부를 확인하는 검수 절차가 아예 없었다. 다시 말해, 납품업체가 연구원들과 결탁하면 시약을 납품하지 않고도 시약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4월에 검수절차를 위해 설치한 중앙물품공급실 역시 시약의 품명과 수량만 확인할 뿐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아 실질적인 검수기능을 하지 못했다. 실제,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연구원들은 파란 색소를 물에 타 진짜 시약과 같은 외형이 같은 가짜 시약을 만들어 납품받았고, 이 가짜 시약은 다음 납품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업체에 돌려주기까지 했다. 검수기능만 제대로 작동됐다면 선납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원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월급여가 200만원 정도인 일부 연구원은 납품업체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명품가방과 보석을 사고 여행경비로 사용하는 등 사치생활을 했다.
구속된 보건연구관은 시약 제조정보를 제조업체에 알려주고, 자신이 만든 가공의 유통업체를 통해 시약을 부풀린 가격으로 납품하는 등 국가의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했다.
이정호 특수부장은 “구조적 범행을 규명해 비정상적 시약 구매 관행과 기능을 못하는 검수 절차 등을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수억원을 낭비한 연구원들을 엄벌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누수를 차단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