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올해는 현충일을 맞아 특별한 행사를 개최했다. 바로 '6·25전사자 유가족 찾기 행사'다.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지난달 6일에도 많은 유가족들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유전자 시료 채취 작업에 참여했다. 백발이 돼버린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세월의 아픔과 피맺힌 60여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에는 총알에 뚫리고 녹슬어 부서진 낡은 철모와 색 바랜 군화, 숟가락, 탄피 수통, 반합 등 유해 발굴시 함께 세상에 나온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총알에 관통된 저 녹슨 철모를 썼던 군인은 전사했으리라. 저 색 바랜 군화를 신었던 군인은 벗지도 못하고 60여년의 세월을 함께 했으리라. 아직도 땅 속 50cm정도에서 눈을 감지 못한 채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다. 한쪽 벽면에는 유해발굴과정을 담은 사진이 게시돼 있었고 영상물이 상영됐다. 6·25참전유공자분들은 사진을 보면서 그 때 전우들과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듯 했다.
삭아버린 우비를 입은 채 발굴된 유해, 철모를 쓰고 두개골이 함몰된 채 전우들과 함께 발굴된 유해, 나무뿌리와 뒤엉켜버린 유해 등 전쟁의 참혹함과 이 땅의 한 뼘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현장을 보았다.
만약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전사자들이 이 땅에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설악산의 단풍을 볼 수 있었겠는가. 피의 능선을 지키지 못했다면 강원도의 넓고 시원한 계곡을 찾아갈 수 있었겠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보면 설악산의 단풍은 이분들이 흘린 피고, 계곡의 투명한 물은 유가족이 흘린 눈물 같다.
현재 국군 전사·실종자는 16만여 명이 되고 현충원 안장자는 3만여 명이며 미수습 전사자는 13만여 명이나 된다.
2000년 유해발굴사업 개시 이래 8000여 국군 전사자가 발굴됐는데 이 가운데 유가족을 찾은 유해는 81구밖에 되지 않는다. 2003년부터 시작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은 2만 5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최소 10만여 명의 유가족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해야 한다.
지난해 6월 20일, 6·25전쟁 때 사망했다가 유해로 발굴된 뒤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 10구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유해 가운데는 북한에서 발굴돼 62년 만에 국내로 봉환된 고 김용수 일병과 고 이갑수 일병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달 20일에도 신원이 확인된 3구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강원 양구에서 전사한 유해 2구와 강원 금하에서 전사한 유해 1구다. 유품은 인식표 등 10여 점에서 30여 점이 발굴됐으며 유전자검사는 삼촌, 조카관계, 5촌 형제관계 등으로 밝혀졌다. 여러 유가족이 유전자검사에 참여한 덕이 크다.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위패실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4만 1000여분들을 위패로 모시고 있다. 이분들의 이름이 위패실에서 모두 지워지고 묘역으로 옮겨져 편히 눈감는 그 날까지, 유전자 검사 작업에 좀 더 많은 국민의 참여가 있길 바란다. 오는 27일은 정전 60주년이다. 종전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전사자의 유해가 하루 빨리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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