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서늘한 부엌 부뚜막 한 켠이나 뒤 뜰의 나무그늘진 장독대 위에는 밥 소쿠리가 광목천으로 덮여 있었다. 땔감도 아껴야 하는 판에 매 끼니를 새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아침에 지은 밥을 점심, 저녁까지 먹으려면 통풍이 잘되고 시원한 곳에 보관해야 했다. 구멍 송송한 대나무 소쿠리와 부엌과 장독대 위는 '천연 냉장고'인 셈이다.
어디 이뿐이랴. 부채 하나 들고 동네 정자나무 밑으로 향하거나 마당 우물가에서 시원한 등목으로 몸을 식혔다. 까실까실한 모시 옷과 이불로 열대야를 이겨내고 콩국수로 복다림을 하기도 했다. 실제 생활습관에서부터 심리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무더위를 이겨냈던 시절이 있었다.
'절약 습관'이 아니라 지금처럼 쓸 만한 에너지가 있지 않아서다. 또는 국가적으로 개발경제에 매진하다 보니 산업전력 중심의 공급정책을 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닌, 수급 불안정으로 발생하는 '블랙아웃(Blackout)'은 그때 그 시절에는 없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올 여름에 원자력발전소의 시험성적서 조작, 불량부품 납품 등 원전 비리로 전력 수급이 위태로워져 제 2의 블랙아웃 사태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더위 만큼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전력난 원인에 대해서 국내 한 민간연구소는 미흡한 전력 수요관리 미흡,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발전설비 확충,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개발 미흡, 이상기후로 인한 전력수요 급변동, 원전의 돌발 정지로 인한 공급능력 급감 등을 꼽았듯이 다양한 원인들이 얼기설기 꼬여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0.44kwh/$인 우리나라다. OECD 평균인 0.25kwh/$를 크게 웃돌고 있다. 프랑스 0.20, 독일 0.18, 영국 0.14, 미국 0.29, 일본 0.22 등과 비교해도 엄청난 소비다.
전력 수요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발전설비 확충 속도와 원전 등 대형발전소에 의존하는 정책실패도 가세했다.
더욱이 환경오염 우려와 지역주민의 반대가 뻔히 내다 보이면서도 '원전 추가 건설'만이 살길인 것 처럼 밀어붙일 줄만 알았지,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신재생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에 등한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우리의 전력생산은 원자력, 석탄, 복합화력이 91.9%를 차지하고 있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3%로 독일 17.7%, 프랑스 14.2%, 미국.일본 각각 10.4%, 영국 7.2%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지경이다.
여기에다 한국전력공사의 시장 독점으로 과잉투자, 설비 부족, 비효율적인 발전기종 선택에 따른 투자손실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등 독점적 운영체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이 부른 상황 때문에 개인과 회사, 산업계, 국가까지 전력대란을 피하려는 안간힘이 백태를 이룬다. 회사원들은 체온을 2℃쯤 떨어뜨릴 수 있는 넥타이 풀기와 반바지에 샌들 등 이른바 '쿨 비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체면과 의전을 중시하는 전통에 발목이 잡힌다. 가정에서도 '전기 흡혈귀'라 부르는 대기전력 소비를 막기 위해 플러그를 뽑거나 TV 시청 1시간 줄이기(312억원 절약), 냉장고 문을 하루에 4번만 덜 열기(63억원), 냉장고보관하는 음식물 10% 줄기기(50억원) 운동도 펼쳐질 지경이다. 산업계도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최근에는 절전이 회사의 존립 좌우한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기도 하다.
전력대란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는 '불편함'에 대한 걱정과 같은 말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 탓, 환경 탓 이전에 '불편함'에 대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념적으로 원전 추가 건설을 막으려면 '에어컨 80만대가 냉방온도를 2℃씩 높이면 원자력발전소 1기를 없앨 수 있다'는 전문가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서늘한 부뚜막과 그늘진 뒤 뜰 장독대에 우리의 습관을 올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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