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
에티오피아는 우리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헌신적으로 도와준 나라다. 6·25 발발 당시 우리나라에 군대를 보내줬다. 6000명이 우리나라에 왔는데 그중 120명이 사망했고, 600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적은 놀랍게도 253승 전승이었다. 황제의 군대였기도 했지만, 승리를 위한 놀라운 정신력과 전투력을 발휘한 것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감흥이 사라지지 않고 에티오피아를 위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간절해졌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이를 감사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 갚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문화의 정체성을 잘 설명한 작품인데 저자는 동양 사람들의 정서에서 중요한 부분은 받은 은혜와 채무를 반드시 갚는다고 서술했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은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를 갚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며 의무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돌봄, 학교에 입학해서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사회인으로 자란다. 도움을 자양분으로 당당하게 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쉽게 잊혀가고 있어 안타깝지만,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진 빚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쁘게 눈앞의 이익만 좇으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도움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인생은 알게 모르게 받은 것을 서서히 갚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보면 더 그렇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헌신, 은혜를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직장과 사회에서 받은 경제적 혜택, 사회적 인정과 사랑 등을 다시 사회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후배들에게는 격려와 배려를 통해, 이웃에게는 봉사와 기부를 통해, 직장에는 충성을 통해 우리가 받은 많은 혜택을 감사함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한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비오는 날 버스에서 내린 한 아주머니는 우산을 쓰고 길을 가다가 비를 맞고 가는 한 청년을 만난다. 소변이 너무 급해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청년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비오는 날이 되자 아주머니는 사무실에서 자신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비를 맞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연히 우산을 건네받았던 청년이 비를 맞고 가는 아주머니의 딸을 만나고 우산을 건네준다. 아주머니가 집에 돌아와 다시 돌아온 자신의 우산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도움, 배려, 감사는 그런 것이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에게 온 은혜이자 축복이며 내가 베풀었을 때는 더 큰 은혜로 나에게 또는 내 후손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쌓은 덕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고 덕을 베푸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치지 않았던가.
감사합니다. 이 말 속에는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나를 완성시켜주는 주위의 모든 것들에 감사의 마음을 품어보라. 신비하게도 행복감이 나를 감쌀 것이다.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더 많은 것으로, 풍성한 것으로 돌려준다면 그 인생은 분명 흑자 인생이며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감사는 행복을 부른다.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해하며 살 수 있게/ 발길에 차이는 작은 풀꽃도 사랑하게/ 작은 것의 소중함을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하소서' 라는 안숙현 시인의 '작은 것의 소중함'이라는 시를 오늘도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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