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현 대전가오초 교장 |
교장실 밖으로 난 화단 앞에서 1학년 쯤 된 아이가 자랑을 늘어놓는다. 유명 인사도 아니고 TV에 나오는 사람도 아닌 나를 보고도 그렇게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마음이 환해진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이들이 해맑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작고 순수한 모습이 더 깜찍하게 느껴진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 한명 한명이 씨앗이고, 꽃송이라고 생각하는 건 참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꽃송이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흐트러지는 것일까? 연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학교 폭력 사건이나 학생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들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교장 선생님을 봤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자랑하는 이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슬픔으로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 학교와 교실은 학생들에게 어떤 곳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였다. 평소 밝고 쾌활하게만 보았던 남학생 10여명이 같은 학년에 있는 약하고 외로웠던 학생을 집단 폭행과 동영상 촬영을 하여 유출한 일이었다.
철이 없어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도 못하던 어린 학생들, 믿었던 학생들에 대한 실망으로 상처 입은 교사들, 상처 받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님들의 모습이 한데 섞여 내 마음에도 커다란 풍랑을 일으켰다.
그런데 모두의 마음에 생긴 상처의 풍랑을 잠재워준 것은 뜻밖에도 바로 피해자의 어머니였다. 처음에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셨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가해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의 손을 하나하나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를 하였다. 가해 학생은 물론 가해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피해자 어머니의 용서 앞에서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가슴 속에 끓었을 분노를 삭인 것은 다름 아닌 모성애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를 제 자식 품듯 보듬어주길 바라는 것은 모든 학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선생님이 부모님처럼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길 바라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마음일 것이다. 모든 학부모들이 모든 학생을 제 자식처럼 귀하게 여겨 주길 바라는 것, 모든 학생들이 모든 친구를 내 형제, 내 자매처럼 아껴주길 바라는 것은 모든 교사들의 마음일 것이다.
지난 주말, 요즘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영화에서 모두가 행복한 학교 공동체를 만드는 비밀의 실마리를 찾았다. 남파 간첩이 2년 간 잠복하여 임무를 기다리다가 결국 버림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에서 학교 공동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남파 간첩이 살고 있던 마을의 모습이었다. 남파 간첩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업무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파악했다. 처음엔 공작 업무였을지 몰라도 남파 간첩은 결국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남파 간첩이 대한민국에 내려와 처음 만난 사람들은 바로 '마을'에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두레'라는 조직 안에서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감싸주었던 지혜가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두레'와 '마을'에서는 조금 다르거나 조금 약하다고 내치고 외면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조상들의 지혜와 마을의 화합을 이제 학교가 배워야 할 차례이다. 학교야말로 우리가 함께 더불어 자라는 마을 아니겠는가? 학생으로서, 학부모로서, 교사로서 학교 안에서 호흡하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파고 들어가, 위대하게 사랑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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