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순혜 수필가 |
지난해 10월 어머니는 급기야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평소에 거동이 불편하신데다, 감기로 인해 급격히 쇠약해지셔서 더 이상은 집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였다. 그 당시는 물론 며칠간 치료받고 바로 퇴원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해가 바뀐 지금도 약간의 차도가 있을 뿐 더 이상 진전이 없어 퇴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매일 문병을 가기는 해도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 병상의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건성으로 이불을 매만져드릴 뿐이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설 때면 발걸음이 더뎌진다. 어머니가 유난히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인데다 가족을 떠나 홀로 있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시기 때문이다. 생전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기라도 하면 겁 많은 어머니를 위해 일부러 같이 입원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버지 역할을 닥터 김이 맡아하고 있지 않나싶다. 그는 회진(回診) 시간 외에도 수시로 병실을 돌면서 환자들의 상황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는 다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내면의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집에 와있어도 마음이 놓인다. 병원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과별 전문 의료진을 구성하고 있다. 그는 복도를 오가면서도 병실내 환자를 들여다보거나, 데스크에서 환자 상황을 자주 체크하는 것 같았다. 요양중이신 어르신들이 계시는 2,4,5층에서는 닥터 김이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어르신들 노래를 들어주기도 하고 신곡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또 때로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재활운동을 돕기도 한다.
하루는 1층 원장실 앞 로비에서 어르신이 보조 기구를 이용해서 걷기 재활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어르신을 감싸듯이 뒤에서 안고 보조기구를 같이 붙들고 걸으면서 말한다. “오른 발, 내 디디세요!” “왼발 내 디디세요!” 그 당시는 그 어르신이 아마 닥터 김의 친인척인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잠깐 어머니를 보고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데 문이 열리자 닥터 김이 휠체어를 밀며 나왔다. 나는 인사를 하며 무심코 휠체어에 앉은 환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였다. 나는 외치듯이 불렀다.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전혀 무표정한 채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나는 다시 소리높여 불렀다. “어머니, 저예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닥터 김이 말했던 치매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난 듯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는 순간 닥터 김이 말했다. “어머니 운동시켜 드리려고 모시고 나왔습니다.” 가슴이 울컥했다. 병원장임에도 주말에 쉬지 않고 출근한 것도 감사한데 이렇듯 환자를 운동까지 시켜주다니 너무 감사했다. 그는 환자하고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그렇게 항상 환자 곁에 있는 듯 했다. 그 병원 요양보호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원장님은요, 우리를 사람으로 봅니다. 환자도 환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봅니다.” 사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렇듯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그 요양 보호사 말대로 그는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그런 그에게 너무 감사했지만 감히 표현 못한 채 그저 먼발치에서 고맙다는 마음만 보낼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용기를 내어 말해 본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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