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그런 점에서 2차대전 이후 전범국가에 대한 역사인식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독일과 일본을 비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49년 서독 정부의 초대 총리가 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는 서독 정부를 국제질서 속에 편입시키기 위한해 제일 먼저 이스라엘과 '룩셈부르크 협약'을 체결하면서 12~14년 간에 걸쳐 배상해 나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로도 독일은 나치 정권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과 유족에 대한 보상, 예를 들면 연금, 위로금, 의료비, 유가족 부양비, 교육비 등을 지급해 왔으며, 개인보상은 2030년까지 계속될 것이고 독일의 전후 보상 총액은 64조원(1100억 마르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유럽에서는 '독일이 지속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는 한 독일의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를 보이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일본은 '역사에 대한 무지', '아시아에 대한 우월 의식', '국제적 인권 의식 결여' 등 아직도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은 채 아시아 주변국들의 아픔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가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를 굳이 자세히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선조들의 잘못을 알면 존경심이 사라져 화(和)가 깨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젊은 세대의 정서가 “전쟁은 할아버지세대가 일으킨 것이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에게 책임을 이야기 하는가?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이야기 할 시대가 아닌가?” 라고 의아해 할 뿐이다.
둘째,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 등 망언에 대한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에는 이를 정치적 위기 탈출의 이벤트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지속되자 국민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우경화 바람이 불면서 '망언=애국 정치인' 이라는 등식이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적 사실이나 국제 선언을 무시하는 망언을 늘어놓으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효과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셋째,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강국으로 급부상 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우월의식을 갖게 되었고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가 한국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18세기 이후 2차대전에 이르는 시기까지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소유하는 등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식민지쟁탈전이 한창이던 시기여서 일본만 주변국들을 식민지화하고 침략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한 전쟁중의 잔악한 행위 역시 서구 열강도 마찬가지여서 일본만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수행한 것 같이 비판받고 책임추궁당하는 것은 공평한 처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흔히 역사현상이나 국제분규를 설명하는 사고의 틀을 제공할 때 '문화는 규칙성을 갖는 행위 패턴'(a particular class of regularities of behaviour)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독일 문화는 '기억과 반성'의 문화라는 점과 아홉개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국제외교문제에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면, 일본은 섬나라 근성(insularity)의 외부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 내부에 대한 '집단주의적' 대처 문화 등으로 인해 주변국들에게 사과하지 않더라도 아쉬울 게 없다는 행위 패턴을 갖고 있다는 점이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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