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샤넬을 이처럼 독보적인 위치에 있게 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으로 보내진 그는 그곳에서 바느질을 처음 접한다. 명품 샤넬 탄생의 발판이 된 것이다. 비록 태생은 암울했지만 지금은 판타지가 돼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허나 갖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소유할 수 없는 것 또한 샤넬이다. 평범한 직장인 월급으로는 선뜻 사기 힘든,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지난주 서울의 한 샤넬 매장에서 마크다운(markdownㆍ제품할인) 행사가 열렸다. 공식행사가 아닌지라 '선(先) 결제 후(後) 수령'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3일 만에 인기제품이 소진됐다. 샤넬은 매년 6월과 1월, 신발과 의류, 액세서리에 한해 행사를 한다. 그나마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가방제품은 할인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번 행사에서는 2011년 제품을 50%, 작년 제품을 30% 할인해 판매했다. 그래도 구두가 60만~100만원대, 의류는 100만~500만원대. 할인가격 역시 명품 가격 다웠다.
돈 걱정 없는 이라면 집 안 가득 쌓아놓고 눈 호강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헌데 흥미로운 기사가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초 미국 명품시장 조사기관인 럭셔리 인스티튜트가 500만 달러 이상 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보석이나 핸드백 같은 명품을 중시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40% 이상은 '명품 브랜드들이 이제는 아무나 사용하는 범용 제품이 됐다'며 더 많은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부자들로 하여금 주저없이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외로 그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은 경험이었다. 그들은 33%가 여행, 20%가 외식에 더 많이 돈을 쓸 것이라고 답했다.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히스토리) 때문이다. 힘들게 탄생됐고 굴곡진 세월을 견디고 다져졌기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다. 그 가치를 이제 부자들은 자신의 삶에 입히고 싶은 것이다. 진정한 명품이 되는 삶.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몸으로 느끼고 기억하는 데 돈을 쓰려는 것이다.
이제 유월도 막바지,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나라 안팎으로 마른 돈 때문에 휴가는 꿈도 못꾸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명품 가방 하나 값만 못한 돈으로도 명품 추억을 만들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김은주·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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