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구]과학과 미술, 그리고 대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박정구]과학과 미술, 그리고 대전

[문화 초대석]박정구 큐레이터

  • 승인 2013-06-23 13:37
  • 신문게재 2013-06-24 20면
  • 박정구 큐레이터박정구 큐레이터
▲ 박정구 큐레이터
▲ 박정구 큐레이터
흔히 우리는 과학은 인간의 이성과 관련된 것으로 미술은 감성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 그 둘을 이질적이며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자와 예술가를 전혀 기질도 다르고 정신세계나 가치관도 다른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 생각에는 어느 정도는 수긍할 점들이 있다고 하겠지만, 같은 인간의 정신활동이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지 않을까.

놀랍도록 사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그리스 조각은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를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리스 고전기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는 인체비례에 관한 연구를 통해 『카논(Canon)』이라는 책을 쓰기도 해 '비례의 입법자'라고 불렸다. 과학(수학)이 예술과 만난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던 피타고라스는 음 사이의 수적 비례를 찾아냈을 뿐 아니라, 별의 운행에도 이를 적용하여 우주가 아름다운 음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은 고대로부터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정신활동의 두 축이었다.

미술에 국한해 보더라도, 과학과 미술은 끊임없이 서로를 자극하고 영향을 주어왔다. 인간의 이성이 복권된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물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이해를 통해 그 안에 깃든 신의 섭리를 알고자 하였다. 무수한 과학적 발명품을 남기기도 한 그는 '화가'보다는 '학자'로 불리기 원했던, 그러니까 미술을 학문으로 보았던 진정한 르네상스인이었다.

수학적인 원근법의 원리와 카메라 옵스큐라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근대 이전 회화의 기법적 완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쇄술과 석판화 기술에서 진전된 사진술의 발명은 회화로 하여금 세계를 재현해내는 역할, 그러니까 '세계와의 관계 맺기'를 사진에게 넘겨주고, 내적 원리와 존재근거를 찾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함으로써 모더니즘 미술, 즉 현대미술을 만들어내었다. 사진은 또한 영화로 발전하여 인간의 문화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일들은 이성에 기반을 둔 과학과 예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미술이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영향과 영감을 주고받은 무수한 사례의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비디오예술가로 우리가 자랑스러워마지않는 백남준 역시, 전자기술의 발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역시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여러 해 전부터 대전에서는 과학도시라는 특성을 살린 미술과 과학의 결합이 이야기되고 또 시도되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미디어아트 전시와 같은 기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왔으며, 최근에는 미술가들과 연구단지의 과학자를 연결하여 미술가들이 작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있다.

미술과 과학이 만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미술가는 미술가대로 먼저 각자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 나아가 철학과 신념이 필요하다. 원리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도는 진정한 과학과 미술의 만남이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과학과 미술의 결합이라는 문제에서 그것이 자신의 작품에서 의미하는 바, 즉 작품세계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전제된 작가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연구하는 바가 인간이나 사회에 주는 의미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예술과의 결합을 통한 연구 성과 자체는 물론 그것이 내포한 또 다른 가치 역시 성찰할 수 있는 과학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미술인과 과학자의 자발적인 의사와 가치의 공유가 전제되고, 대전이라는 공동체가 그를 위한 터전을 만들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러한 일들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