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식 부여 백제중 교사 |
2012년, 3학년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 2학년 때 많이 보았던 학생들이라 이름과 얼굴, 그리고 성향까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주로 자율학습 시간에 상담했다 성 정체성까지 상담을 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학생을 보면서 무엇인가 위로와 격려가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우리 반 학생이 가출을 했다. 친했던 친구들을 동원했음은 물론이고 전화로, 문자로 수없이 연락을 시도했지만 학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문자도 받을 수 않았다. 급기야 떨어져 살던 학생의 아버지가 파출소에 가출 신고를 해 버린 상황! 무단결석이 이어지던 날, 현장체험학습이 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을 때 내 생일파티를 차 안에서 준비해 놓았다. 작은 케이크와 빼곡하게 마음을 담은 엽서가 35장! 고맙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나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학생이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을까? 머지않아 시험인데, 무단결석이면 성적이 최하점으로 나올 것이고 고등학교 진학에 어려움이 있을 텐데….'
며칠 뒤, 밤 12시가 지난 시간에 문자가 왔다. 나는 한 시간을 운전해서 그 학생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일단 밥부터 먹였다. 그 다음에 학생의 집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반기지 않는 상황! 학생을 데리고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샤워를 하고 같은 방에서 잤다. 그제야 속마음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는 아이! 폭풍같은 눈물을 흘리는 학생 곁에서 나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는 단잠에 빠졌다.
고등학교 1학년! 나에게도 너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술, 담배, 가출은 하지 않았지만 무겁고 짙은 갈등을 하며 어둠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는 언제나 죽음의 순간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말이 없는 학생! 방해는 되지 않았지만 수업 집중을 전혀 하지 않는 학생, 그리고 어쩌다 입을 열면 짧고 거친 말투의 학생, 입학성적에 비해 성적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학생. 담임선생님은 상담을 원하셨지만 의도적으로 기피했다. 남모르는 병마와 맞서 싸우던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싫었다.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흘렀다. 그러던 토요일, 억지로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선생님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1박 2일이 내 삶에 희망의 빛을 주었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먹고 같이 거실에서 자고, 다음날은 덕유산 산행을 했다. 내 마음을 열 수 있었다. 1박 2일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교사가 된 후, 가끔 그 선생님을 떠올리곤 했다. 요즘 교육현장이 매우 힘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특히 폭주하는 업무와 뒷받침되지 않은 인성교육이 빚어내는 현상들에 몸도 마음도 쉬 지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에게 되묻곤 한다. '너의 성실성, 그리고 열정을 혹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잊고 살진 않는지'.
요즘, 출근을 빨리 한다. 어떨 때는 6시, 심지어는 5시. 조용히 교무실에 앉아 포스트잇을 떼고 붙이는 일이 시작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목과 우리반 학생들을 챙기는 것이다. 어떤 칭찬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분명 즐겁고 신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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