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생활이라는 것이 좋은 일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의지처를 구한다. 생의 저편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하느님일 수도 있고, 절대자일 수도 있고, 부처님일 수도 있으며, 대자연의 어떤 힘일 수도 있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항상 현생과 내세를 위한 의식을 정성을 다하여 치른다.
범패는 불교의식을 수행할 때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인데, 네 가지 소리(평성·상성·거성·입성)를 고르게 섞어 가며 때로는 짧게(홋소리), 때로는 길고 구성지게(짓소리) 하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어(魚)와 허(虛), 아아훔(阿阿)의 세 가지가 주로 쓰이는데, 어는 범어(梵魚)라 하여 천상을 말하며, 허는 우주의 광활함을 뜻하는 허공을, 아아훔은 삼신불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 삼신불에게 중생의 소원을 비는 것이다.
범패의식을 수행하는 데는 4가지 물건 징, 북, 쾡쇠, 목탁이 쓰인다. 그런데 이 4가지는 우리가 어느 절에 가거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범종, 북, 운판, 목어를 대신한 것이라 한다. 범종(징)은 지옥에 있는 중생을, 법고(북)는 짐승들을, 운판(쾡쇠)은 날짐승을, 목어는 물짐승을 잘 이끄는 뜻이 있다.
범패의식에는 병법(秉法), 어장(魚丈), 어산(魚山), 인도(引道) 네 가지가 있는데, 병법은 요령을 쥐고 법회를 주관하는 스님이고, 어장은 쾡쇠(운판)를 쥐고 어산을 지휘하는 스님이다. 어산은 북·징·목탁 등을 쥐고 의식을 진행하는 대중이며, 인도는 의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스님이라 한다.
이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고유의 3대 성악곡이라 하는데, 신라 때 진감선사가 당에서 들여와 우리 정서에 맞게 정착한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지배층에 한정되다가 백성의 심금을 울리는 쉬운 사설 등을 붙여 일반에도 널리 퍼져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한다.
범패소리는 슬픈 듯한 곡조에 나는 듯한 소리로 상쾌하고 구슬퍼 능히 천상의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최치원이 지은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에 남아있다고 한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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