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초대석]한국 관악계의 산증인-노덕일 한국관악협회장

[중도초대석]한국 관악계의 산증인-노덕일 한국관악협회장

남들랐던 '괴짜 인생사' 희망을 울리다

  • 승인 2013-06-18 12:52
  • 신문게재 2013-06-19 11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한국 관악계의 산증인', '행사 음악의 달인'이라 불리는 음악인. 40년 가까이 한일 민간교류를 이끌고 있는 '민간외교대사'.
300여 회의 콩쿠르 심사와 3000여 회의 행사 진행 등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으로 음악을 전하고 있는, 영원한 관악인이자 이 시대에 귀감이 되는 한국 관악계의 진정한 원로 노덕일(74ㆍ사진) 한국관악협회 회장을 이르는 말이다. 관악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괴짜 행동을 펼치며 더욱 유명해진 그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호탕한 성품이 매력적인, 마음만은 '꽃중년(?)'노신사다.

나이를 물으면 그는 '90살'이라 말한다. 신체나이 50에, 마음 나이 40을 더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 관악계의 태두로, 대전을 전국 최고 수준의 관악도시로 만든 노덕일 회장은 지난 2005년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의 음악단체인 충남관악단 '희망울림'을 창단해 9년째 음악감독 지휘자로 활동하며 수백회의 연주를 통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 17일 대전 중구 선화동 한국관악협회 사무실을 찾아가 '다단계 인생'이라 일컫는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 봤다.

▲ 노덕일 한국관악협회장
▲ 노덕일 한국관악협회장

콩쿠르 심사ㆍ3000여회 '행사음악의 달인'
40년간 관악으로 韓日 민간친선외교 역할
장애어린이 '희망울림' 따뜻한 메시지 전달

-관악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당시 친구들이 저더러 음악박사라고 했어요. 음악선생님보다 음악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그렇게 부르곤 했지요(하하하). 6ㆍ25전쟁이 일어났을 때 5학년이었던 저는 전쟁 음악을 듣고, 군가를 대중가요 스타일로 바꿔 부르기도 했어요. 중학교에 입학한 후 어느 날 옆집 담 너머로 선배의 나팔 부는 소리에 반해 바로 클라리넷을 시작하게 됐지요. 이를 기회로 대전공고 밴드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겁니다.”

-노 회장님 댁 가정 환경도 음악과 멀리 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요?

“대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규모의 '카네기 양복점'을 대전극장통에서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음악을 누구보다도 좋아하셨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시진 않았지만 미술가, 음악가처럼 '양복가'가 양복을 멋있게 만들어서 입혀주면 그게 예술 아니겠냐는 말씀을 하시곤 했죠. 매번 아침 기상때는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이 우리 형제들의 기상나팔소리처럼 들리곤 했으니까요.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을 들었죠. 일종의 태교였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은연 중에 마음속에는 음악이 젖어 있었던 것 같아요. 95세인 제 아버지는 지금도 좋은 음악회가 있으면 서울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셔서 연주를 듣고 오실 정도입니다. ”

-갑작스레 가세가 기울어 진학의 꿈을 접고 공군 군악대에 입대해 '2중 생활'하며 대학까지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얼마 후 어머니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1959년 친구들은 대학을 갔지만, 저는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죠.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에 군악대로 입대했고, 이후 공군 교향악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단원으로 활동하며 2중 생활의 영광도 얻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 '행사의 달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여기에 스윙밴드까지 담당하게 됐습니다. 모두 젊음과 군인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기에 공군본부에서 지원하는 우수장병 장학금 지원에도 선발돼 서라벌예술대학 음악대 기악과에 입학할 수 있었죠. 대한민국에서 국가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제가 제일 먼저 손 들겁니다(하하하).”

-관악에 대한 무한사랑과 '괴짜 행동'으로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는 일화가 있던데요?

“부여고등학교 음악교사 시절, 관악부를 활성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악기를 제대로 갖춰야 하지만 시골 학생들에게 악기 구입비는 큰 부담이었죠. 그래서 고민끝에 계룡대 육군본부를 찾아 당시 이진삼 육군참모총장의 면담을 요청했죠. 부여고가 이진삼 육참총장의 모교였거든요. 모교에서 온 선생님이라고 하니 만나주더군요. 이진삼 총장께 '총장님의 모교 후배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은데 악기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죠. 그러니까 이 총장께서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 군부대 군악대에서 쓰지 않는 악기를 무조건 다 모아 달라고 부탁했죠. 이 총장께서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이후 모아진 악기 가운데 괜찮다 싶은 30개를 받아 부여고 관악부를 활성화할 수 있었습니다.”

▲ 우송중 이종덕 교사(한국관악협회 사무총장, 한국관악협회 대전지부장ㆍ사진 왼쪽)는 노덕일 회장의 제자이자 후배, 동지로 40여년 한결같은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노덕일 회장은 이종덕 교사 부부를 '천사'라고 부른다.
▲ 우송중 이종덕 교사(한국관악협회 사무총장, 한국관악협회 대전지부장ㆍ사진 왼쪽)는 노덕일 회장의 제자이자 후배, 동지로 40여년 한결같은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노덕일 회장은 이종덕 교사 부부를 '천사'라고 부른다.

부여고 음악교사 시절, 시골학생 교육 위해
육참총장 면담요청 군부대 악기 지원받기도
9월 순천 '전국 관악페스티벌' 준비에 최선

-해군본부와도 에피소드가 있었고 폭침된 천안함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룡시 용남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당시 있던 일이에요. 이 학교 학생들은 70% 이상이 3군본부 등 군부대 자녀였어요. 하지만 학생들은 부모들과 달리 안보에 대한 관심이 없었죠. 학생들의 안보견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백령도로 교육을 가야겠다고 해군본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해군본부에서는 배를 타는 이외에는 안된다고 답신이 왔어요. 그래서 해군본부의 배를 빌려 학생 80여명과 함께 백령도로 2박3일 교육을 다녀왔던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 빌려 탔던 그 배가 훗날 폭침을 당한 천안함이더군요.”

-회장님께서는 장애우들로 구성된 '희망울림' 관악단을 만드셨는데요.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에게 음악의 힘을 보여주며, 음악을 통한 희망 전도사로 활동하는 보람이 클 것 같습니다.

“희망울림은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우들이 모여 음악을 하는 단체입니다. 2004년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일본을 갔을 때 장애인들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 도내에서 장애인음악밴드를 지도할 교사를 찾았죠. 그때 제가 발탁돼 '음악 장애인 밴드'가 결성됐죠. 악기를 구입하고 장애우들 30명과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에게는 악기를 드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어요. 일부 선생님들은 손을 놓자고 했지만, 6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실력이 점점 느는게 보이더군요. 2005년 12월 공주문예회관에서 선보인 '희망울림'의 창단연주회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어요. 무대도, 객석도 함께 울었죠.

이후 '희망울림'은 여러군데서 초청공연 제의를 받았는데요. 천안교도소, 공주교도소 등의 재소자들에게 공연을 선보이며 교화활동을 하기도 했죠. 신체적인 장애가 있지만 이를 이겨내고 연주하는 '희망울림' 관악단의 공연이 수감자들에게 큰 동기 부여를 한 거죠. 이제는 '희망울림' 연주가 벌써 100여회를 훌쩍 넘겼어요. 바로 '희망울림'이 이들에게 '음악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거죠.”

-한ㆍ일(대전ㆍ고마쓰) 문화교류에도 힘써 오고 있으신 데요. 어떻게 한일 민간교류를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공군교육사령부 군악대장으로 있을 때 일본 가호고등학교 관악단의 공연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청소년들의 연주 수준이 우리나라 군악대 수준보다 높아 충격을 받았던 거죠. 그래서 일본측 대표로 왔던 당시 일본관악협회장 가스나 마나부에게 한일 교류를 제안했죠. 그가 흔쾌히 제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 북륙지부와 한국 충남지부와 자매결연하고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교류는 1975년 8월 제1회 대전시 고교선발 관악합주단 48명과 임원 9명 등 57명이 북륙지부의 초청으로 도야마시와 고마쓰시, 후꾸이시 등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이뤄졌습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분야가 서울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관악'만큼은 대전ㆍ충남이 한국의 1번지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후 100여회 넘게 약 5000여명이 교류를 펼쳤습니다. 한국 관악의 발달은 일본과의 교류 덕분이지요. 40여년간 일본 관악인들과 친형제처럼 가깝게 교류하면서 민간친선외교사절 역할에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

-회장님곁에는 늘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던데요. 회장님을 친아버지처럼 섬기는 이종덕 선생님과의 인연이 깊으신 것으로 압니다.

“우송중 음악교사이자 학생과장인 이종덕 선생님은 대전상고 시절과 목원대 음대 시절 제가 참으로 사랑했던 제자이자 후배입니다. 지금 한국관악협회 사무총장과 한국관악협회 대전지부장을 맡아 얼마나 부지런하게 일을 잘하는지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지입니다. 40년동안 저를 헌신적으로 보좌해주면서 알아서 일해주는 이종덕 선생님의 착한 심성과 성실함, 뛰어난 일처리능력 덕분에 제가 편하게 한국관악협회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겁니다 ”

-회장님의 생활신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실까요.

“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습니다. 단 한사람도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누구에게나 최대한 좋은 벗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의리와 인정과 배려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아온 평생입니다. 설령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쁜 사람이라도 '덜 좋은 사람'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오는 9월에는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순천에서 한국관악협회가 주최하는 전국 관악페스티벌 경연대회가 있습니다. 전국에서 6000여명의 관악인들이 참여해 기량을 겨루는 대회죠. 이 대회를 성황리에 잘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중이랍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 세가지는 한국관악협회를 만든 것입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니면서 각 지부를 설립했고, 한일간 교류를 통해 각 악단을 창단한 것입니다. 인정 많은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제가 정이 많은데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며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ㆍ정리=박수영 기자
사진=손인중 기자

●노덕일 회장은 누구?
▲1941년 대전 출생 ▲1966년 서울 서라벌 예술대학 음악과 졸업ㆍ1978년 대전 목원대학 음악교육과 졸업 ▲1960~1965년 공군교향악단, 한국교향악단, KBS방송관현악단 단원 역임 ▲1973~1976년 대전공군교육사령부 군악대장 역임 ▲1980~2003년 대전ㆍ충남 중고등학교 음악교사 ▲1992~2002년 한국음악협회 대전부지부장 역임 ▲2000~2009년 한ㆍ일(대전ㆍ고마쓰)우호친선협회장 ▲2005~현재 충남관악단 '희망울림' 음악감독 및 지휘자 ▲2009~현재 한국관악협회 회장 ▲대전중구 문화학교장 ▲대전중구문화원 부원장 ▲대전중구관악합주단 음악감독 지휘자 ▲대전페스티벌 윈드오케스트라 지휘자 ▲한국관악협회 회장 ▲대한민국 관악상, 경로효친 문교부장관상, 안일승 음악상, 신지식인 선정, 백제재단 교육대상, 충남도 문화상, 홍조근정훈장, 일본 고마쓰시장 감사장, 대전예술가상, 한빛문화대상 수상 ▲일본ㆍ홍콩ㆍ대만ㆍ싱가포르 전국대회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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