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명렬]역사 교육의 재고를 바란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류명렬]역사 교육의 재고를 바란다

[세설]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3-06-13 14:15
  • 신문게재 2013-06-14 21면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무자비한 범죄를 자행했다. 나치 학살에 희생된 유대인 수가 600만명에 달했을 정도다. 그런데 한 유대인 여성이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살해한 나치 전범이 재판정에 섰을 때 “용서합니다. 그러나 잊지는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말은 아픈 과거 역사를 대하는 유대인의 인식을 잘 대변하고 있다. 참혹한 역사이자 아픈 과거에 대해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같은 시기, 일본군에게 30만명이 학살당한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세워 과거를 결코 잊지 않으려 했다. 기념관 내 한 전시실에서는 천장에서 12초마다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지게 만들어놨다. 12초마다 죽어간 희생자 30만명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려는 중국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국내는 어떠한가. 최근 한 언론사가 청소년 506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3 청소년 역사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349명(69%)은 “6·25전쟁은 북침”이라고 대답했다. 또 지난해 시행된 한 대학생 역사인식 조사에서는 한국전쟁의 발발시기를 1950년 6월 25일이라 정확히 대답한 대학생은 조사자 중 46%에 불과했다.

이같이 청소년의 역사인식이 무너진 것은 교육 당국의 입시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5년부터 한국사가 포함된 수리탐구영역이 선택과목으로 전환됐다. 학생들에게 한국사의 중요성이 반감된 것이다. 그나마 유지되던 선택의 작은 폭도 지난 정부에서 수험생에게 도입된 집중이수제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사 선택을 더욱 포기하게 만들었다. 시험과목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 도입했지만, 전체 학생 가운데 불과 6~7%만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대인들이 2000여년간 나라없이 세계 도처를 유랑하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고토(故土)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역사 교육에 있다. 해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전통 명절을 지키면서 자녀들에게 역사교육을 철저히 시행한다. 일례로 유대인들이 40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한 끝에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Pass-over)의 경우,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조상이 이집트에서 얼마나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노예생활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유월절뿐만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명절 대부분은 신앙적이며, 자기 민족 정체성을 인식하는 교육적인 차원이 매우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자기 이해이며, 자기 정체성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수많은 해외 입양아들이 성장하면서 원망하던 친부모를 찾겠다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자기 부모가 누구이며, 자기 뿌리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즉 자아에 대한 역사인식이 없으면, 자신의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처럼 아픈 과거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아니라, 역사 인식 자체가 무너지는 시점에 직면해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전체 청소년들 가운데 단지 6~7%만이 공부하는 나라의 교육과 앞날에 어떤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이를 보다 못한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은 몇 주간에 걸쳐 한국사를 공부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국사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필수 과목이 돼야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들이 바라본 것은 무엇이며, 그 맥락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받침이요 시작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