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같은 시기, 일본군에게 30만명이 학살당한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세워 과거를 결코 잊지 않으려 했다. 기념관 내 한 전시실에서는 천장에서 12초마다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지게 만들어놨다. 12초마다 죽어간 희생자 30만명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려는 중국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국내는 어떠한가. 최근 한 언론사가 청소년 506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3 청소년 역사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349명(69%)은 “6·25전쟁은 북침”이라고 대답했다. 또 지난해 시행된 한 대학생 역사인식 조사에서는 한국전쟁의 발발시기를 1950년 6월 25일이라 정확히 대답한 대학생은 조사자 중 46%에 불과했다.
이같이 청소년의 역사인식이 무너진 것은 교육 당국의 입시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5년부터 한국사가 포함된 수리탐구영역이 선택과목으로 전환됐다. 학생들에게 한국사의 중요성이 반감된 것이다. 그나마 유지되던 선택의 작은 폭도 지난 정부에서 수험생에게 도입된 집중이수제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사 선택을 더욱 포기하게 만들었다. 시험과목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 도입했지만, 전체 학생 가운데 불과 6~7%만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대인들이 2000여년간 나라없이 세계 도처를 유랑하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고토(故土)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역사 교육에 있다. 해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전통 명절을 지키면서 자녀들에게 역사교육을 철저히 시행한다. 일례로 유대인들이 40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한 끝에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Pass-over)의 경우,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조상이 이집트에서 얼마나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노예생활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유월절뿐만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명절 대부분은 신앙적이며, 자기 민족 정체성을 인식하는 교육적인 차원이 매우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자기 이해이며, 자기 정체성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수많은 해외 입양아들이 성장하면서 원망하던 친부모를 찾겠다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자기 부모가 누구이며, 자기 뿌리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즉 자아에 대한 역사인식이 없으면, 자신의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처럼 아픈 과거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아니라, 역사 인식 자체가 무너지는 시점에 직면해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전체 청소년들 가운데 단지 6~7%만이 공부하는 나라의 교육과 앞날에 어떤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이를 보다 못한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은 몇 주간에 걸쳐 한국사를 공부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국사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필수 과목이 돼야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들이 바라본 것은 무엇이며, 그 맥락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받침이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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