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도]협동조합 열풍의 빛과 그림자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박진도]협동조합 열풍의 빛과 그림자

[논단]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승인 2013-06-13 14:15
  • 신문게재 2013-06-14 20면
  •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래 6개월 동안 협동조합이 1000곳 이상이 설립됐다고 한다. 가히 폭발적인 속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업은 부모·형제간에도 하지 마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다른 사람과 협동보다는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가르칠 정도다.

오래전 일이다. 한 교육학자가 이스라엘 키부츠를 방문, 아이들에게 이솝우화 '거북이와 토끼'를 들려주면서 거북이처럼 부지런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한 아이가 “왜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서 같이 가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키부츠의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경쟁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협동조합은 낯설지는 않다. 농업협동조합(이하 농협)과 수산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설립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몇몇 생협을 제외하면 협동조합의 제구실을 못하면서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 국내 최대 협동조합인 농협조차도 조합의 주인인 농민들에게서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될 정도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협동조합 열풍일까.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 설립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새로운 협동조합은 조합원 5명 이상만 참여하면 출자금에 상관없이 설립할 수 있다. 기존 개별협동조합법과 달리 사회적 협동조합이 아니면 시·도에 신고만으로 설립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협동조합에 관련된 최근의 열풍은 경기침체와 열악한 복지 등 심각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자구책에서 비롯됐다. 경제 호황기에는 개인 또는 국가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협동해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FC바르셀로나, 스위스의 미그로, 미국의 썬키스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자국만 아니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협동조합 운동가 일부는 이 같은 대형 협동조합의 국제적 성공사례를 들면서 협동조합의 가능성과 우수성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다.

이를 위해 농협을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으로 개혁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통적인 협동조합과는 다른 새로운 협동조합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퀘벡의 '사회적 경제'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는 전통적 협동조합과 새로운 협동조합 모두 포함하지만, 방점은 후자인 새로운 협동조합에 놓여 있다. 퀘벡주는 인구 800만 명 가운데 협동조합 조합원은 880만 명일 정도로 협동조합이 발달한 지역이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가 공적 담론에 들어온 것은 1996년 주 정부가 소집한 '고용과 경제에 관한 대표자 회의'에서부터다.

이 회의에는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 외에 시민사회 내 다양한 조직(사회운동조직, 지역사회조직 등)이 대화에 참여했다.

이는 자원 배분 등에 대한 통제를 더는 국가와 시장에만 맡겨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퀘벡은 육아와 노인돌봄 서비스를 주 정부가 직접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 경제'(연대협동조합)에 보조금을 지급해주고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연대협동조합에는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자, 지역사회 등 모든 핵심적인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협동조합 이사회에 참여한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첫째, '사회적 경제'는 시장ㆍ국가권력에 맞서 시민사회가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대안적 방식이다.

둘째, '사회적 경제'가 발전하려면 상응하는 시민사회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벌써 협동조합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협동조합을 빠르게 많이 설립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협동조합이 지닌 대안적 의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뒷받침할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체가 광범위하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