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또한 환자 옆에서 간병하는 가족들의 경우에도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꿈꿔온 병원의 모습은 완벽한 첨단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원 속에 위치해 환우는 물론 가족들도 자연과 어우러진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병원은 환자들의 출입이 용이하도록 도회지에 위치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형 병원들은 시내 한가운데 높은 빌딩의 병동 몇 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서대전에 위치한 건양대병원의 작은 변화는 환자들에게는 물론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의료진 모두에게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말 병원 구내에 단장한 '힐링숲'이 그것이다. 터널처럼 숲이 양쪽으로 우거져 한낮에도 그늘이 늘 드리워져 시원할 뿐만 아니라 메타세콰이어, 편백나무 등이 내뿜는 피톤치드로 한번 거닐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힐링숲은 건양대병원이 위치한 곳이 과거 대전 최고의 아름다운 명소로 알려져 있던 만수원(萬樹園)이 있던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환자들의 치유에 활용할 방법이 없겠는가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다. 메타세쿼이아와 편백나무 숲이 약간 남은 곳에 소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모과나무, 향나무 등을 새로 식재하여 풍성한 숲을 조성하고 예쁜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산책로의 이름을 의료진과 직원, 환우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여 '힐링숲'으로 정하고 예쁜 팻말도 마련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의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여유와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환우들은 물론 가족들도 그 표정이 한결같이 편안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더러는 도시락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힐링숲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이런 것이 친환경병원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힐링숲은 환우와 병원을 찾는 방문객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물론 옛대전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어 시민들의 호응이 큰 것 같다. 장년의 시민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수학여행지로, 또 결혼 후에 신혼여행지로 만수원에 대한 추억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일부분만이라도 옛기능을 회복해 간다는 것이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원래 만수원은 세계 최고의 여행기로 알려져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곳이다.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열었던 허베이성(河北省) 청더(承德)에 있는 별궁의 북쪽에 있던 정원으로 불꽃놀이, 등불놀이 등 화려한 불꽃행사가 주로 벌어졌던 곳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의 한분인 연암선생은 열하일기에서 당시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온통 경이로운 시선으로 기술하였으며, 특히 만수원의 불꽃놀이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은 듯 많은 부분을 할애해 묘사했다.
“매화꽃같은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마치/ 부채로 숯불을 부쳐 불똥이 튀어 흐르는 것 같다./ …/ 불꽃이 활짝 퍼져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서는/ 부드러운 선을 그으면서 내려오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대포소리는 더욱 커지고 불빛은 더욱 밝아져서,/ 수많은 신선과 한량없는 부처가 뛰쳐나와 하늘로 올라간다./혹은 뗏목을 타고 혹은 조각배를 타고, 혹은 고래를 타고 혹은 학을 탔다/ ” <매화포기(梅花砲記)>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수많은 신선과 한량없는 부처'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묘사한 연암선생의 시어(詩語)처럼 힐링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신선'과 '부처'처럼 환우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으로 기대한다. 건양대병원 힐링숲을 거니는 환우들이 청나라 별궁 만수원의 불꽃놀이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세포들을 산산이 불태워버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기를 기원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