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아직도 생일날 흰쌀밥, 소고기 미역국이 차려진 생일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장차 어른이 되면 매일 먹기 원하던 밥상이었고, 그러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지겨워했던 보리밥, 수제비는 웰빙붐을 타는 요즘도 노탱큐다. 동네 부잣집에 1대 있던 TV를 통해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하는 장면을 보던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아직도 TV를 바보상자가 아니라 요술상자로 모시고 산다.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이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취업하러 나갈 때 독일 광부들이 자가용을 몰고 출퇴근한다는 말을 듣고는 무슨 천국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유신시절 “100억 수출, 1000불 소득, 마이카 시대 개막”의 구호가 난무할 때 나는 앞 2가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3끼 쌀밥도 못먹는 처지에 언감생심 내 생전에 마이카 시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덧 이제 마이카 시대를 넘어서 차가 애물단지인 시대가 되었다. 집집마다 차를 2대 이상 가진 사람이 흔하고, 더 나아가 차로 인해 신세를 망치는 사람도 속출하고(음주운전, 뺑소니범), 주차시비로 칼부림이 나지않나, 교통사고 사망자 세계 1위라는 불명예까지 얻을 지경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 세계최빈국에서 G20의 국가로 성장하였고, 전쟁통 천막교실 땅바닥에서 공부한 학생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내 생전에 불가능하리라 생각한 것 중 둘째는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자유당 시절 어느 외신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악담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1980년 대학교 졸업식에서 총장님 말씀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시대에 졸업하는 여러분을 축하합니다”라고 덕담을 했는데, 우연히 다음해 졸업식 갔더니 그 분은 “불가능 속에서 한계를 찾자”고 덕담을 바꾸었다.
3선 개헌, 유신, 5공으로 이어지던 10대-20대 시절에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자연스럽게 하는 선진국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이제 우리나라도 여야가 서로 정권을 주고받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이루어 내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타협정신이 부족하여 벼랑끝 전술이 횡행하지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셋째는 통일이다. 역사적으로 약소국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경우를 보면 통일의 역동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은 15세기말 국토회복전쟁을 통해 나라를 통일하고 그 역동성을 추진력삼아 신대륙을 개척함으로써 세계 강국이 되었고, 독일도 19세기 후반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함으로써 강대국 반열에 올랐으며, 2차세계대전 이후 분단상태에서는 정치지도자들이 절묘한 시기를 포착하여 교묘한 외교로 재통일을 이루고 다시 유럽의 엔진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도 19세기 오랜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면서 강국대열에 들어선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제 2차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나라 중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현재 통일의 비전은 커녕 북한 핵으로 야기된 갈등구조가 극에 달한 느낌이다. 그러나 작금에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북한이 자신의 맹방이었던 중국과의 관계에 금이 가는 양상을 보이면서 마치 백제의 마지막 시대 국제관계를 보는듯하다. 그 당시 신라가 외교적 수완가 김춘추를 통하여 국제외교를 이끌었듯이 지금 이 시대도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미·중·일·러 4각 외교를 교묘하게 추진할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 때다. 젊은이들에게 이태백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통일의 비전과 열정, 미래를 고취시키고 교육하자. 불가능하게 보였던 마이카 시대나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진 것처럼 우리의 통일도 어둠속에서 새벽처럼 다가온다. 통일을 이루는 날 우리나라는 4070클럽의 스마트한 국가로 우뚝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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