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전쟁의 상처, 기록이 필요하다.
2.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논산포로수용소
3. 잊혀가는 대전형무소 우물터
4. 치열했던 격전지, 세종시 개미고개
5. 60년만에 한국 찾은 참전 미군 어빙 포츠맨티어
6. 취재를 마치며
▲ 한국전쟁당시 촬영한 공군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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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에서도 지워지고 있다.
한국전쟁 전적지는 제대로 정비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아 국민, 학생들이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많았다.
대전, 세종, 충남지역의 전적지에 대한 취재는 지난 2월 25일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텍사스에서 기자에게 날라온 이메일 한통, '한국전쟁 때 미392영현중대에서 근무했던 이영태, 송태호 등 한국인 전우를 찾고싶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 한국전쟁 당시의 한 길거리 모습. |
논산포로수용소는 전국에서 운영된 몇 안 된 수용소로 상징성이 크다. 포로는 당초 6000여 명으로 전해졌지만, 포로전문가 조성훈 박사를 통해 1만1000여 명이 수용됐고 8000여 명이 석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숨진 포로가 없었던 것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참전 미군인 어빙 포츠맨티어씨가 논산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최소 60~70여구의 포로들이 기관총 등 총에 맞아 처참하게 숨져 있었다. 어빙씨는 반공포로 시체를 빨리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 어빙씨는 미군이 나중에 문제소지가 있어 시체를 빠르게 처리하라고 명령한 사실을 60여년만에 확인했다.
이러한 흔적들이 현재는 찾기가 어렵다.
거제도수용소처럼 거창한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논산시는 관심도 부족한 모양새다. 표지석 하나, 기록물 하나라도 남겨놔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1981년에 발견된 포로로 추정되는 유해도 발굴해야 한다. 당장 유해를 찾기가 어려우면 기록을 남겨 후손에게 전해줘야 한다.
대전형무소 우물터도 논산수용소보다 낫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물터는 실체가 남아있는 전쟁 역사 중 귀한 흔적이다.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암울했던 역사를 지켜보고 몸소 체험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2001년 망루가 대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될 때 우물터는 소외됐다.
▲ 한국전쟁당시 군인들이 '대성전'이라고 쓰여진 곳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 |
이같이 수많은 전적지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아직 남아있는 곳이라도 기록을 남겨, 보존하자는 것이다.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같은 민족끼리 목숨을 걸고 싸웠던 현장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의지다. 한국전쟁을 증언해줄 세대들이 사라지면 이 조차도 찾기 어렵다. 구증이라도 전해줄 증언자가 있을 때 기록을 남겨야 한다.
안여종 대전문화연대 운영위원은 “한국사 관련해 논란이 많다. 우리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며 “우리 마을에 대한 역사부터 알아가는 것이 역사교육이다. 역사의 현장에 대한 보존과 기록은 역사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는 기록에 의해 후대에게 전해진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끝>
조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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