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매일같이 반복되는 전력예비율 보도와 블랙아웃 위험경고는 시민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전 국민을 상대로 전력사용 자제를 읍소하는 시대착오적 모습을 보이냐는 냉소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2조원이나 들어가는 발전소를 더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오후 2~5시의 피크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력공급이 충분하다고 하니 그 시간에만 협조해 달라는 정부당국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이미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 조차 비리와 부정으로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국민 모두가 앵그리 버드처럼 “화가 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더위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전력사용에 관한 스트레스도 높아가는 계절이다. 원래 에어컨 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체질을 가진 나로서는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애국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년 에어컨을 살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면서 에어컨없이 지내왔던 것이 본의 아니게 자랑스러워지는 기분이다. 그래, 애국이 뭐 그리 거창한 것이던가? 정부가 밀가루 분식을 장려할 때는 열심히 국수 먹고, 쌀이 남아돈다고 걱정할 때는 열심히 쌀국수로 바꿔 먹는 사람이 선량한 시민 아닌가?
고작 에어컨 하나 틀지 않으면서 애국심까지 들먹이는 일은 물론 착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기회에 그동안 정말 착각하고 있지 않았는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에 관한 재고다. 미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공짜 점심은 없다”(No Free Lunch)는 말이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의 모든 편리함에 대한 비용을 누군가,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지불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다만 그 누군가가 우리는 아니고, 그 언젠가가 오늘은 아니며, 그 어떤 방법이 우리와는 절대 관계없을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문명의 혜택이라며 마구 즐긴 “공짜 점심”의 청구서는 결국 우리 후손들이 지불하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탄소배출권 문제가 바로 “공짜 점심”의 비용 여부에 관한 논의 가운데 하나이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물질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와 에너지가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온실가스를 발생시켜 지구온난화와 이상기온 현상을 가져온다고 한다. 특히 이산화탄소의 발생이 치명적이라서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규제하자는 국제적 움직임이 탄소배출권 협약인데 우리나라도 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홍보 덕분으로 일반시민들도 탄소배출권 문제에 관한 의식이 높아져서 탄소포인트제, 탄소가계부, 탄소발자국 등의 개념이 많이 알려지고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홍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냉난방을 1°c 만 낮추어도 연간 110kg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고, 일주일에 승용차를 하루만 이용하지 않아도 연간 445kg의 탄소발생을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은 시민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호소력을 지니는 내용일 것이다.
당장 블랙아웃이 우려되니 전력사용을 줄여야 된다는 스트레스성 경고보다는 미래를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동참하자는 말이 더욱 긍정적이고 더욱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더운 날씨를 굳이 프레온 냉매 가스와 전기를 동원해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피서(避暑)'라는 옛 말처럼 부채 하나를 들고 살랑살랑 흔들면서 더위를 피하는 것이 바로 자연을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이 가르쳐준 탄소절감의 지혜이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흘러가는 시간에 더위를 씻어 버리는 탁족(濯足) 역시 우리 후손들에게 칭찬받을 탄소배출 제로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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