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순지르기 - 많은 꽃눈과 결실을 위한 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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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순지르기 - 많은 꽃눈과 결실을 위한 슬기

우리문화를 아시나요

  • 승인 2013-06-10 14:24
  • 신문게재 2013-06-12 21면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면서 상쾌하다. 아침햇살과 함께 들녘의 야생화를 만나면 더욱 그렇다. 도심의 길가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야생화의 끈질긴 생명력은 하루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한다. 요즈음 씀바귀와 애기똥풀의 노랑꽃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에 비길데가 없다. 그런데 자연의 신비는 이 두 꽃에도 담겨있다. 씀바귀는 잎줄기에 흰색의 즙을 가지고 있는데, 애기똥풀은 꽃색깔과 같은 노란즙을 가지고 있다. 흰색즙과 노란즙의 대비는 신비롭기만 하다. 노란즙이 모유를 먹는 갓난아이의 똥색깔과 같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 했다고 한다. 우리 겨레의 식물 이름짓기 속에 담긴 슬기와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쯤이면 농촌에서도 오이며 가지, 참외, 수박, 호박 등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건실한 열매를 많이 얻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영양성분이 있는 물을 주는가 하면 열매가 땅에 닿아 썩는 것을 막기 위해 마른 풀이나 볏짚, 보리짚, 밀짚 등을 깔아주기도 하고 퇴비를 얹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지를 많이 쳐서 많은 꽃눈이 맺혀 건실한 열매를 얻기 위하여 순지르기를 한다.

순지르기는 땅기운을 받아 생육이 왕성한 열매식물의 원 줄기의 맨꼭대기 순을 잘라 주는 일을 말한다. 순지르기를 안한 열매식물은 곧장 한줄기만 자라게 되어 꽃눈이 몇 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순지르기를 하면 순쪽에 몰린 땅기운이 더는 뻗칠데가 없어서 곁에서 숨죽이고 있던 작은 순들을 자라게 하여 곁가지가 왕성하게 자라도록 한다. 이 곁가지도 어느 정도 곧게 자라면 원줄기에 했던 것처럼 곁가지의 순도 잘라준다. 그러면 곁가지에서 숨죽이고 있던 작은 순들이 다시 자라나 곁가지로 자라게 된다. 그러면 한포기의 열매식물은 마치 그물망처럼 풍성하게 자라게 되어 많은 꽃눈을 갖게 되고 꽃을 피워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쑥갓과 같은 야채들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순지르기를 하면 할수록 연하고 맛있는 야채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순지르기 끝에 꽃눈에서 피어난 꽃들은 여간 싱그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호박, 참외, 오이의 노랑꽃, 가지의 보라색꽃, 새하얀 박꽃 등의 암꽃 뒤에 숨어 있는 여린 열매 속에서 결실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읽을 수 있다.

“호박꽃도 꽃이다”는 둥의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호박의 수꽃을 따서 꽃잎을 볏겨내고 꽃술을 가지고 암꽃의 꽃술에 꽃가루를 묻혀주거나 큰 참외를 보면 호박참외라 하면서 호박의 수꽃술을 참외의 암꽃에 가져와 꽃가루를 묻히던 추억 또한 새롭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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