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 전망에 큰 맘 먹고 샀지만 원전 사태와 전기료 부담에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데다, 정부가 전력수급 비상에 따른 에너지 절약대책 방안으로 사용량에 따라 추가 전기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여름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예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이란 전망에 서둘러 에어컨을 구입한 가정들이 부쩍 늘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종합가전전문매장 등에는 올 초부터 지난 4월까지의 예약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많게는 5~6배까지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무더위기 기승을 부려 소비자 상당수가 더위를 참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 서둘러 구매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불량 부품 사용이 드러나면서 원전 가동이 잇따라 중단돼 전력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26, 공공기관은 28 이상의 냉방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반가정과 기업체들도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전기료 부담과 주변의 눈치 때문에 에어컨 가동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200여만원에 에어컨을 산 주부 A(46)씨는 “고3 수험생 자녀도 있고 해서 전기료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올여름은 시원하게 보낼 생각이었다”며 “하지만 온 나라가 전력비상이어서 에어컨을 맘대로 틀지도 못하게 됐다”고 푸념을 털어놨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B(53)씨도 “지난해 에어컨이 낡은 관계로 손님들의 불만이 계속돼 올해는 큰 맘 먹고 장만했지만 올해 제대로 가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처럼 전력난 우려가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비교적 전력소모가 적은 선풍기를 추가 구입하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서구의 한 종합가전전문매장에는 이달 들어 선풍기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5배 이상 늘었고, 중구의 한 매장은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온라인 마켓인 옥션의 경우 지난 한달간 선풍기 판매량이 전월 대비 13배나 증가했을 정도로 수요가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기업체들도 사무실 에어컨 가동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선풍기로 대체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C(56) 사장은 “더위에 직원들이 고생하지만 정부 차원의 에너지 절약대책이 강력하게 추진돼 에어컨은 최소한으로 가동하고, 대신 선풍기를 1대씩 지급했다”며 “원전 가동 중단으로 기업체는 물론 가정에서도 상당한 고통으로 여름을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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