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수 국회의원(새누리당·아산) |
다만, 한일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시기라서 내심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한데, 짧은 여정 속에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두 가지 일을 직접 경험했다.
우선, 태권도 가족인 히쿠치(Etsuo Higuchi) 일가를 만난 일이다. 그는 30여 년간 태권도를 해왔고, 한국 국기원 공인 7단으로 각종 일본 국내외 대회에서 많은 수상실적을 가지고 있다. 자영업자로 일하는 시간 이외엔 거의 태권도 속에서 산다. 부인도 태권도 애호가이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태권도 유단자다.
구마모토 성(成) 옆에 있는 본인의 태권도장을 찾아가니, 선명한 태극기가 크게 걸려있다. 일본의 전통 무예인 가라테나 유도를 제쳐놓고 한국의 태권도에 빠져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얘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현재 구마모토 시내에는 23개의 태권도장이 있고, 구마모토 대학에도 태권도팀을 운영하도록 지도하고 후원해 온 주인공이 바로 이 분이다.
단순히 태권도의 전수만이 아니라, 한국의 음식을 비롯한 한국문화에 이미 친숙해져있는 친한파(親韓派)이자 지한파(知韓派) 일본인인 셈이다. 요즘의 한·일 관계가 떠오를 때마다 구마모토 시내 한복판 태권도장에 걸린 대한민국 국기가 더운 크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더욱 가슴 뜨겁게 한 일은 '무궁화회' 모임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태권도연맹 임원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찬파티에 자발적으로 여러명이 참여했다. 나이가 유난히 많아 보이는 치구치 한쪼(筑柴汎三) 회장과 점잖은 구마모토 지역 유지들이다.
회장 얘기에 의하면, 1976년 친한(親韓)적 성향을 가진 인사 이삼십 명이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 이름을 따서 처음 설립한 이래 40여년을 계속 만나고 있다 한다.
그것도 매월 1회씩 모임 횟수가 480여회가 넘었다고 하니 우리 한국인조차 그 열정에 놀랄만한 일이다. 일본인으로서 '무궁화회'를 명칭으로 사용하고 모임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해온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도쿄에서 일본인 승객을 구하고 본인은 전철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국인 유학생 이수연 씨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1월 26일 제사를 올리고 있다는 얘기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 뜻을 전해 듣고 이수연 씨 부모님이 구마모토를 방문해 함께 했다니 잔잔한 감동 이상의 그 무엇을 가슴을 울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80살이라는 키 작은 노인 한 분이 나와서 가라테를 잘하지만 한국 태권도도 좋아한다고 직접 동작을 보여줘서 이날 만남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일본의 아베 총리, 하시모토 시장 등 정치인들이 한·일 과거사를 부정하고 왜곡된 역사인식을 연일 쏟아내지만 일본에 이렇게 양식 있고 바람직한 역사관과 한일관계를 생각하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 더구나 구마모토가 임진왜란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카토 히요마사(加藤淸正)의 고향인 점을 생각한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장에 사는 내게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뛰어넘는 감동이 더욱 무겁고 진하게 다가왔다.
세계가 한 가족인 글로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정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일본 방문이었다. 한일관계 또한 해묵은 정치와 국가주의의 틀을 넘어서 민간이 주도하면서 새로이 우의를 다지는 세기를 열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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