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호 고암 미술재단 대표 |
2007년 개관 당시 백색 시멘트와 뮤제오그라피(museographie)를 처음 사용하며 명품미술관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건축도 예술품이어야 한다는 세계 추세에 부응해 건축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이 같은 호평 덕에 일 년 내내 건축과 학생들의 시설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이응노 미술관이 주목받는 이유가 단지, 건축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과 건물 내ㆍ외부 콘셉트를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통일시킨 '뮤제오그라피'만은 아니다.
동양사상인 '비움의 미학'을 담아내려는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의 의도가 건물 곳곳에서 배어나기 때문이다. 보두엥은 기존 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 등 다른 건물과 조화를 위해 미술관의 규모를 키우지 않았다. 소박하고 수수한 미술관을 만들려고 했다.
마치, 고암의 수묵 담채화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한 매력을 풍기는 건물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지 생각될 정도다.
실제 보두엥은 고암의 주요 소재인 대나무와 소나무를 건물의 정문 앞과 창문 너머에 자리 잡도록 했다. 그는 미술관에 장식적인 기교의 미보다 보이지 않는 '氣'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그가 동양화의 기본정신인 '기운 생동'을 이해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고암이 원했던 미술관은 산속의 암자와 같은 작고 소박한 집, 하지만 안채로 들어가면 내공이 느껴지는 꽉 찬 공간이었을 것이다. 보두엥은 고암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고암이 남긴 문화적 유산에서 고암의 뜻을 이해한 뒤 현재와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했다.
보두엥이 고암의 작품을 모티브로 미술관을 설계하였던 것처럼, 고암은 이탈리아 탐험가이자 여행가였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그림으로 재현했다. 고암이 남긴 '동방견문록' 79점의 작품은 지난 1980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관련한 책을 집필하던 한 작가가 고암에게 삽화를 의뢰하며 제작이 되었다.
그런데 고암은 제작 당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귀동냥한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 역시 유럽에서 아시아까지의 여행과 중국에서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감옥에서 만난 루스티첼로라는 소설가에게 받아쓰게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암과 마르코 폴로는 자유를 향한 호기심과 현실 이탈을 꿈꾸는 상상가로서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가 지나면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고암의 동방견문록도 그 돌연변이의 하나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고암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의 서술을 기초로 하지만 표현기법 면에서는 동양화의 풍경묘사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마르코 폴로 시리즈에 주로 사용된 고암의 표현기법은 이동시점을 활용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사물을 고정된 시점으로 바라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대상의 면면을 관찰하고, 기억에 따르며 재현한 것이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원근법과 명암에 충실한 서양화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음으로는 외적 형상보다 내면의 깊이를 중요시하며 정신이 깃들어 있는 부분에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섬세한 묘사가 있는가 하면 생략과 여백으로 대담하게 처리했다.
마르코 폴로가 동양을 여행하고 유럽인들의 시선에서 동방견문록을 남겼듯이, 고암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프랑스에서 서예 추상과 군상이라는 한국적 표현양식으로 된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고암의 예술에 눈을 뜬 프랑스인 로랑 보두엥은 대전에서 이응노 미술관이라는 동서의 만남을 상징하는 미술관을 세웠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접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뛰어나 상상력의 결실인 동방견문록은 모든 분야의 융합과 소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꼭 감상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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