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강박' 은평공원 정자 배부른기둥 대략난감

'문화적 강박' 은평공원 정자 배부른기둥 대략난감

배흘림 기둥 흉내도 못내고 불편한 기둥 전락 훗날 21C 대전대표 문화재로 지정될까 걱정

  • 승인 2013-06-04 14:58
  • 신문게재 2013-06-07 12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객원기자' 지면은 중도일보 객원기자들의 기사로 제작됩니다. 중도일보 객원기자는 2009년 제1기를 시작으로 올해 제5기까지 총 123명이 선발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전과 충남, 충북 곳곳에서 객원기자들이 발로 뛰며 전해오는, 우리 이웃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와 지역현안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이있는 보도를 기대해봅니다. 객원기자 지면은 5월31일자부터 11월 29일까지 총 26회 게재되며 한주는 지역소식 중심 지면으로, 한주는 문화재 중심 지면으로 번갈아 운영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 joongdonews@gmail.com> <편집자 주>

▲ 2008년 10월 8일 중앙데파트 폭파 순간.
▲ 2008년 10월 8일 중앙데파트 폭파 순간.
'21세기 대전을 상징하는 문화재는 무엇이 될까?'

이러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진 것은 건설현장이 아닌 건물의 철거현장이었다.

지난 2008년 10월 8일 오후, 대전천 목척교 인근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필자도 그 중에 한 명이었으며 8층 건물의 창가에 삼각대 두 개에 각각 카메라를 설치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대전 최초로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 보기위해 십리를 걸어서 왔었던 소년이 삼십 여 년이 지난 오늘 그 건물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메라 파인더에 들어오는 것은 곧 폭파되는 건물에 걸린 '원도심 재창조 카운트다운' 펼침막과 그 뒤로 새롭게 건설 중인 코레일 사옥인 쌍둥이 빌딩이었다. 순간적인 생각이었지만 지금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단순히 콘크리트 건물의 한계수명과 하천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중요한 철거의 명분이 될 수 있음에도 '목척교 주변 복원이 원도심을 다시 살립니다'라고 강조한 것이다. 혹시 뒤편에 건축 중인 쌍둥이 빌딩이 한계수명을 다하고 철거될 때도 원도심을 살리는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백 년 후 즈음에 21세기 대전사람들의 문화를 상징할 만한 건물은 무엇이 될까 하는 의문이다. 아마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많은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물질 또는 기술 등이 우리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용된 기계나 서류 또는 실물 등이 무난하게 보존된다면 문화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주변에 있는 최근의 건물 중에서도 문화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문화적 선입견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직분에 창의성과 정성을 다하는 이들이 미래의 문화재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된다.

▲ 서구 은평공원 전경(육교에서 촬영)
▲ 서구 은평공원 전경(육교에서 촬영)
문화적 강박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대전지하철 월평역 3번 출구를 나오면 오른편에 은평공원이 있다. 여러 체육시설과 함께 조형물들이 많다. 육교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장승 한 쌍이 있고 상가 방향에는 대리석 돌을 매끈하게 가공하여 세운 높이 5m 정도의 대형 장승 한 쌍이 또 있다. 친절하게도 안내판 까지 세워 놓았으며 '신성시 하는 것'이라는 표현까지 있다. 안내판 표현처럼 신성하게 대해야 할 장승이 오늘 날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장식물로 전락해버린 현상이 21세기의 문화가 된 셈이다.

대전지역에서는 장승을 만날 기회가 없다면 모르겠으나 인근 마을에서 예부터 신성시 하며 해마다 제사는 지낸 장승이 10여 기가 넘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여럿인데도 불구하고 장식물로 세워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갑천대교 네거리에 설치된 육교에서 북동쪽 은평공원으로 들어가는 곳에 다다르면 박석이 깔린 공원길에 이른다. 박석은 문화적으로 신성하거나 위엄이 있는 공간(궁궐의 중심공간, 제사용 건물 등) 대지에 납작한 자연석을 울퉁불퉁하게 설치되는 것이다. 혹시 설계자는 비가 오는 날씨에 공원 이용자의 신발이 젖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박석의 기능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박석이 깔린 왼편으로 잔디가 심어졌던 곳으로 이용자들은 새로운 길은 만들고 말았다. 박석을 설치한 조형적 의미만 남은 셈이다.

신성한 것이라 안내하면서 신성한 방법으로 만들지도 않고 일상에서 신성하게 대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문화적 강박감을 버리고 시대의 삶과 사상을 반영하는 창조물이 그립다.

배흘림기둥과 배부른기둥의 차이

공원을 이용자하는 사람들이 새로 만든 길은 공원의 중심에서 갑천을 향해 건축된 큰 건물인 정자로 향한다. 전통 건축물인양 보였지만 가까이 접근하면 이내 알게 된다.

▲ 은평공원 정자의 (배부른)기둥 
<br />사진=임헌기 객원기자
▲ 은평공원 정자의 (배부른)기둥
사진=임헌기 객원기자
전통건축의 처마선인 곡선이 아닌 직선이며 초석과 난간, 기둥, 들보 등이 모두가 콘크리트가 재료이다. 정자를 직접 시공한 현장 기술자들의 어려움이 느껴지긴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저토록 불편한 기둥은 본 적인 없을 것이니 기둥에게 뱃살 좀 빼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을 보거나 쓰다듬어 본 적이 없을지라도 대한민국의 건축가 또는 설계자라면 들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더구나 건축 중에 감독을 한 사람도, 준공검사를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과는 배흘림기둥을 흉내 내지도 못하고 결국 배부른기둥을 만들어 놓았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의 가까운 동춘당 기둥이라도 안아보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나서 흉내를 내었으면 좋았을 것을….

문화재의 분류 중에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 등의 분류는 당시의 사회상, 지역성, 기술이 표현된 대표적인 대상을 분류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은평공원의 정자는 제법 튼튼한 재료를 지어진 정자이므로 훗날 21세기 대전을 대표하는 정자건축물의 표본으로 문화재로 지정될까 두렵다.

임헌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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