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진 대전경실련 사무처장 |
버진 아일랜드 등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그것이 바로 탈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대기업 또는 유명인들이 조세피난처를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번에 밝혀진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자산가들이 조세피난을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면 이는 현 정부가 역점으로 두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반할 뿐 아니라 조세정의에도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외 탈세는 이미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2012년 7월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 결제은행(BIS)자료를 분석 발표한 조세정의 네트워크에 의하면 지난 30여 년간 888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자금이 역외 유출되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자금의 역외유출 국가라고 한다. 조세피난처에 해외법인을 두었다고 세금을 회피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국내 유명기업 그룹들과 대기업들이 이를 통해 거액의 자산을 페이퍼 컴퍼니에 이전하거나 조세피난처 지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불법 또는 편법적인 수단을 통해 세금을 회피하거나 불법재산을 은닉하려 했다는 것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이렇지만, 국세청에 의해 적발되어 추징된 세금 내역을 보면 2012년까지의 최근 5년간 537건 적발에 2조 6218억 원 추징이 전부인 듯하다.
더구나 537건 모두가 고발되거나 통고처분된 것이 아니고 45건만이 고발되거나 통고 처분되어 전체 역외탈세의 8%만이 과세당국에 의해 적발되고 강제처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외탈세에 대한 과세당국의 처벌 수준이 강력하지 못하고 미미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외 탈세에 대한 수법 등이 갈수록 지능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찾아내고 바로잡아야 할 과세당국의 대응은 역외탈세의 수법 지능화를 뒤따라가기에도 바쁜 것 같다.
물품 등의 실제 거래 없이 자금을 빼돌리는 허위 경비처리, 해외법인 손실을 위장한 불법 이득 행위,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주식배당소득 등이 대표적인 역외탈세의 유형들로 과세당국이 철저한 의지를 가지고 조사해야만 추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위법행위에 대한 적절한 대응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와 별개로 강력한 검찰 수사와 처벌이 병행되어야만 불법적인 역외탈세를 찾아낼 수 있고 막을 수 있다.
또한 해외로 빼돌린 불법재산과 불법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추징뿐 아니라 그 재산에 대한 환수에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금회피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국제조세조정법등의 관련 법률에 대한 개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고 국제 조세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이를 방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해외금융계좌에 대한 신고제와 더불어 미신고 계좌에 대한 처벌조항을 강화하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10억 원 이상 계좌 미신고시 10%의 과태료 부과만을 가지고 세금 탈루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는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련 부처의 분명한 철학과 확고한 의지를 가진 정책 추진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설득력 있는 결단과 대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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