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호 동구의회 의원·前 일본교과서왜곡 분석연구원 |
숨돌릴 틈 없이 광복절 이른 아침에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광란 극이 연출되고 있었다. 신사 입구로부터 도로 양쪽에 늙은 일본병사들(?)이 늘어서서 진군나팔을 불고 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참전했다가 살아남은 노인들이 아직도 천왕의 군사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 참회에서, 그리고 자기들만 살아남은 죄책감에서인지 나팔을 불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로 조복을 입은 참배객들이 무수히 지나갔다.
역사 뒤집기의 극치는 이미 1879년 메이지천황이 보여준 것이다. 특히 주변국들을 침범하고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임에 한동안 일본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주변국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2001년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시작된 참배는 해를 더해갈수록 뻔뻔스러워졌다. 여론조사를 보면 그 뻔뻔스러움에 동조하는 일본인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밖에서 메이지대학생들이 '천황제 철폐' '전쟁 절대 불가'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자꾸만 '우향우'를 향해 가고 있다.
문제는 망언경쟁이 저희들끼리의 정국 주도싸움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이 역사왜곡과 함께 신판 제국주의로 일본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대표적인 세가지 이슈가 일본의 침략사 은폐, 위안부 부인, 독도 영유권 문제다.
첫째, 침략에 대한 문제는 이미 1995년 무라야마총리가 공식적으로 식민지배를 사죄한 바 있음에도 점차 이를 부정하는 망언이 늘고 있다. '조선침략'을 '조선진출' 정도로 호도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검정을 받는 일본 사회과 교과서의 대부분에서 일본의 침략사 왜곡과 삭제가 철저히 진행되는 것과 흐름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아, 망각을 최선의 방책으로 삼는 것이다. 어느 얼빠진 정치학자는 전쟁범죄를 일본인 1억2000만명으로 나누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니 죄가 없다는 논리도 편다. 둘째, 위안부에 대해서도 1993년 고노(당시 관방장관) 총리가 일본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인정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부정하며 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미국 하원에서는 '위안부 사과 권고 결의안'으로 경고를 한 바 있다. 재일사학자 김일면씨가 쓴 “천왕의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에서는 마치 마루타실험을 하듯, 위안부들에게 하루에 평균 29명을 접대하도록 계획적으로 꾸민 사실도 폭로되고 있는데 말이다. 특히 하시모토는 일본인의 중국매춘관광을 '공적개발원조'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제 어미가 위안부로 끌려가도, '전쟁 중이니' 하고 이해할 사람으로 보인다. 셋째, 독도 문제는 센카쿠, 이어도,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함께 영토분쟁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영토분쟁은 신제국주의를 예고하는데, 이를 위해 일본과 중국은 국력을 기울여 역사날조를 다해간다.
일본을 이끌고자 하는 하시모토는 자신을 쓰러지지 않는 '잡종개'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미친개'가 되면 몽둥이가 약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는 실천으로 역사의 현장을 재건해야 한다. 전쟁범죄를 알리기 위해 '전쟁과 성노예박물관'을 건립하고, 한때 방영됐던 '여명의 눈동자'와 같이 많은 미디어물이 제작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담뿍 받아, 전 세계에서 우리의 영토를 수호할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