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컨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젊은 날들이었다. 평일에도 연구소에 남아 늦게까지 일하고 때로는 휴일을 마다하지 않고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 최선의 삶인 듯 여기며 살아왔다. 그 후 대학을 옮겨 조금의 여유를 찾았다. 그러나 50세가 넘어선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중간결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1970년대 경제성장,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격변의 시대를 두루 겪으며 살아왔지만,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벌써 반세기를 살았다.
축구경기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하프타임 15분은 경기의 승패를 위해서 꽤 중요한 시간이다. 긴장을 풀며 쉬기도 하겠지만, 전반전의 전력을 분석하며 후반전의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느 지점을 가야 할 것인가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나는 하프타임을 보내고 있다. 지난날을 반추하며 인생 후반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던져준 전략의 시간은 귀하고도 귀하다.
필자는 우선 인생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살피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과 행동을 천천히 그리고 결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살기를 소망한다.
중국의 시인 두보는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라고 했다. 꽃잎 하나만 날려도 봄이 줄어드는데 수만 꽃잎이 흩날리니 참으로 슬프다는 표현으로 가는 봄을 아쉬워했다. 참으로 예민한 감수성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온몸의 오감과 예민한 촉수만 열어 놓는다면 나머지의 삶은 시인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처럼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 둘레의 자연에 오래 눈을 두고 듬뿍 사랑을 주고 싶다.
또한, 인생 후반에는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이 들면 미움도 그리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아쉬운 인연으로 끝난 사람, 찾아가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 그때 정말 좋았지만 고백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이들이 종종 떠오른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것이 스친 인연이다. 그때 최선을 다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곤 한다. 지금부터라도 친구나 직장동료와 조화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시기나 미움은 저 멀리 두고 양보하고 인정하면서 격려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장 어렵지만 또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차이 인정하기가 아닐까? 서로의 차이만 인정한다면 주변과 쉽게 화해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세월에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연륜은 나이가 주는 지혜다. 살면서 우리 생각과 달리 험한 파도가 밀려오면 당분간은 떠밀려 갈 수 밖에 없고 밀려가다 보면 어딘가 새로운 곳에 닿을 것이고 거기서 새를 씨를 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말 자신이 원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거기에 좋은 영향력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의 열정』이라는 책에서 안젤리나 졸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라.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라.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그 말은 그녀 자신을 향한 주문이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아름다운 영향이기도 하다. 한때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정신병원에도 수용됐던 그녀가 봉사를 통해 세계 자녀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최근에는 유방절제 수술로 '안젤리나 효과'라는 기사가 타임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녀의 삶을 이끈 힘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선택은 그녀를 할리우드의 반항아에서 세계적 박애주의자로 변신시켜 놓았다.
인생 중간결산. 결산을 마치고 남은 나의 인생을 어느 방향을 향해 트느냐에 따라 웃으며 눈을 감을 수도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과 하직할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의 마지막과 조우할지는 손에 핸들을 쥔 나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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