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말은 변화하고 변질된다. 서양의 '러브(love)'는 일본에서 '연애'로 번역됐다. “이(李)가 일찍이 마을의 소녀를 보고 깊이 연애하여~”가 처음이다. 1870년에 태어난 연애가 국내에 1920년대 자유연애로 수입되더니 최근 중성적으로 바뀐다. 국립국어원은 사랑, 연애, 애정을 '이성'에서 '어떤 상대' 사이, '남녀'에서 '두 사람'의 일로 고쳤다. 필자의 견해는 사랑, 연애의 의미장(意味場)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쪽이다. 인간의 사랑만이 사랑인가?
얼마 전, 말로만 듣던 조선 정조 때의 『심리록(審理錄)』을 봤다. “엄중히 문초하여 계문하라 하였다”, “참작 정배하려 하였다”, “엄형한 후 방송(放送)하라 하였다” 등의 표현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는 '방송'이었다. '방송'이 '죄인을 놓아주다'였다는 사실 역시 이미 다뤘다. 범인 잡는 '검거(檢擧)'는 사물의 속내를 살핀다는 게 옛 용례다.
이번엔 방송국에서 하는 '방송'이다. 걸그룹 씨크릿의 전효성이 라디오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지난주 카이스트(KAIST) 축제의 초청가수로 대전에 온 그녀는 “잘못 쓰이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을 사과했다. '민주화'는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획일화, 왕따, 비추천'의 의미로, 산업화는 자신들의 이념을 주입하거나 남의 생각을 바꾸기 정도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한 가지 더. '비싸다'는 15세기에 '빚이 싸다, 빚지기 마땅하다'였다. 그만큼 '물건이 좋다'였다. 또 '싸다'는 '그 값이 마땅하다'였다. '맞아도 싸다'는 매 맞아도 마땅하다는 활용이다. 가시만 돋친 말은 비판받아도 싸다. 말 변화→생각 변화→행동 변화→세상 변화의 고리를 더 낫게 변화시켜야 마땅하다.
이 대목에서 떠올려야 하는 인물이 물박사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연구 결과, '사랑', '감사' 등 긍정적인 말을 들은 물은 결정(結晶)이 보석같이 영롱했다. 베토벤 전원교향곡을 감상한 물은 결정이 가지런하고 모차르트 교향곡을 감상한 물은 결정이 화려하다. 좋은 약속인 말은 그 방향으로 문화를 형성하고 재형성한다. 여기서의 약속은 '프라미스'의 그 약속이다.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