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민주화(?)하는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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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민주화(?)하는 언어들

  • 승인 2013-05-24 15:45
  • 신문게재 2013-05-27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만만한 상대를 갖고 놀 때 '관광 보냈다, 관광 시킨다'고 한다. 얼마 전 팝아트협동조합이 '우리는 박정희를 관광한다'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예술적 시각으로 소통 수준을 얼마나 높였는지 모르겠으나 '관광'이 압도적으로 패배시킨다는 의미라면 꺼림하다. '관광(觀光)'이 옛날 '과거시험 치러 가기'라는 것은 본란에 소개했었다.

말은 변화하고 변질된다. 서양의 '러브(love)'는 일본에서 '연애'로 번역됐다. “이(李)가 일찍이 마을의 소녀를 보고 깊이 연애하여~”가 처음이다. 1870년에 태어난 연애가 국내에 1920년대 자유연애로 수입되더니 최근 중성적으로 바뀐다. 국립국어원은 사랑, 연애, 애정을 '이성'에서 '어떤 상대' 사이, '남녀'에서 '두 사람'의 일로 고쳤다. 필자의 견해는 사랑, 연애의 의미장(意味場)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쪽이다. 인간의 사랑만이 사랑인가?

얼마 전, 말로만 듣던 조선 정조 때의 『심리록(審理錄)』을 봤다. “엄중히 문초하여 계문하라 하였다”, “참작 정배하려 하였다”, “엄형한 후 방송(放送)하라 하였다” 등의 표현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는 '방송'이었다. '방송'이 '죄인을 놓아주다'였다는 사실 역시 이미 다뤘다. 범인 잡는 '검거(檢擧)'는 사물의 속내를 살핀다는 게 옛 용례다.

이번엔 방송국에서 하는 '방송'이다. 걸그룹 씨크릿의 전효성이 라디오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지난주 카이스트(KAIST) 축제의 초청가수로 대전에 온 그녀는 “잘못 쓰이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을 사과했다. '민주화'는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획일화, 왕따, 비추천'의 의미로, 산업화는 자신들의 이념을 주입하거나 남의 생각을 바꾸기 정도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김치도 김치녀니 탈김치니 하여 비하의 용어가 됐다. 희롱거리가 된 산업화와 민주화는 언어의 타락, 균형 잃은 역사인식까지 개탄해야 할 노릇이다. '민주'도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일본 번역어지만 '국민이 주인'은 엄연한 약속이다. '약속(約束)'도 원래 '프라미스' 아닌 요즘의 '단속'이었다. pro-가 붙은 promise는 '미리 말해 놓다'에서 나왔다. '관광'과 '강간'이 중의적(重意的) 용법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섰다. '미리 말해 놓은' 약속이 틀어지고 있다.

한 가지 더. '비싸다'는 15세기에 '빚이 싸다, 빚지기 마땅하다'였다. 그만큼 '물건이 좋다'였다. 또 '싸다'는 '그 값이 마땅하다'였다. '맞아도 싸다'는 매 맞아도 마땅하다는 활용이다. 가시만 돋친 말은 비판받아도 싸다. 말 변화→생각 변화→행동 변화→세상 변화의 고리를 더 낫게 변화시켜야 마땅하다.

이 대목에서 떠올려야 하는 인물이 물박사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연구 결과, '사랑', '감사' 등 긍정적인 말을 들은 물은 결정(結晶)이 보석같이 영롱했다. 베토벤 전원교향곡을 감상한 물은 결정이 가지런하고 모차르트 교향곡을 감상한 물은 결정이 화려하다. 좋은 약속인 말은 그 방향으로 문화를 형성하고 재형성한다. 여기서의 약속은 '프라미스'의 그 약속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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