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
필자가 기억하는 최근의 대표적인 갑을 관계는 대형마트와 SSM이다. 2007년 354개였던 대형마트는 지난해 449개로 늘었고, SSM은 353개에서 1024개로 늘었다. 대형마트 매출은 44조원으로 늘었지만, 전통시장의 매출은 36조원에서 24조원으로 감소했다. 또 SSM 주변의 슈퍼마켓 매출도 34%나 줄었다.
거대한 유통공룡인 대형마트는 중소상인의 생계형 업종인 떡볶이, 빵집, 순대 등의 업종까지 진출하고 있고, 그 탓에 중소상인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편의점도 갑을 관계의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편의점 점주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청년취업난 때문에 20~30대 청년들의 편의점가맹점주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편의점 수는 2008년 1만1802개였던 것이 지난해 10월 2만3687개로 두배 넘게 증가했다. 참여연대 자료를 보면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24시간 강제영업과 영업지역 미보호, 과도한 이익배분율(가맹본부 35%), 폐점시 과다한 위약금 등과 상시로 발생하는 대기업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결국, 편의점주들은 장사를 해도 이익을 볼 수 없게 돼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한 대기업 우유회사의 영업담당 직원이 대리점주를 상대로 온갖 폭언을 하면서 매출을 늘리려고 한 내용이 폭로됐다.
이에 온ㆍ오프라인에서 해당 우유회사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수사기관의 수사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며 해당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고 한다.
을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갑의 횡포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드러난 누구나 들어본 사례에 불과하다. 슬픈 현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갑과 을의 관계 때문에 갑으로부터 일방적인 횡포를 받는 을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주범은 누구일까. 그 주범은 신자유주의이고, 이를 대책없이 제도를 만들어 수용한 정치권이다. 시장의 자유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폐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은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가가 나서서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함에도,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뜨겁게 논쟁한 경제민주화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민주화가 대기업만 아닌 갑의 횡포를 제어하고자 하는 궁극의 수단은 아니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이 또한 절실하지 않은가. 지금은 정부의 공공부문 책임과 역할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올로프 팔메'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강한 사회를 통해 시장의 자유를 적절히 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 사회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오늘날의 복지국가 스웨덴이 있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철저히 방임된 사회다. 국가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대기업 빵집처럼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서야 통제에 나서는 현실이다.
필자는 갑과 을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정치 위에 경제가 올라서서는 안 된다. 경제활동 안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한다'는 올로프 팔메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물리력에서든 경제력에서든 강자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영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헨리 토니의 말에 동의한다. 을이 갑과 건강하게 공존하는 방법은 국가도 알고 있다. 이제 실천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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