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종영 정림종합사회복지관장 |
드라마는 시청률에 따라 그 횟수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합니다. 각종 운동경기의 감독들은 그 성적에 따라 그 계약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 땅에 경쟁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입시도 경쟁이요, 취업도 경쟁입니다. 때문에 경쟁에서 지는 이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경쟁의 경(競)은 '겨루다'는 뜻입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 한 방향을 향해 모든 주자들이 횡으로 서 있다가 신호와 함께 달려 나가는 것이 경이지요. 이렇게 겨루어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심보가 '경'에는 들어있습니다.
경쟁의 쟁(爭)은 '다투다'는 뜻입니다. 마주 서서 다투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권투가 쟁이요, 축구도 쟁인 셈입니다. 어쨌든 '쟁'에도 상대편을 쓰러뜨려야만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심보가 들어 있음입니다.
복지의 현장에서는 경에서도 밀리고 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납니다. 똑같이 출발하고 내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좋은 조건과 좋은 실력을 가지고 내달리는 이를 따라잡기에는 태부족입니다. 아무리 싸워보려 해도 무쇠로 담금질 한 칼 앞에 뒷동산에서 잘라 만든 나무칼로 싸우는 격이니 이미 싸움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결국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이요, 양극화의 절정으로만 치달리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함께' 라는 말과 '서로' 라는 말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을 향해 내가 먼저여야 한다며 홀로 달려 나가는 '경'의 반대는 '함께'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슴 펴고 어깨 걸고 '함께' 하겠다 하는 것이 '경'과는 다른 의미인 것이지요.
'쟁'의 반대는 '서로'입니다. 마주보고 주먹으로 다투든, 공으로 다투든 상대를 눕혀야 되는 상황에서 '서로' 사랑하겠다 하니 다툼이 되지 않는 상황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서로'라는 의미는 참으로 좋습니다.
'갑'과 '을'이 어느 때보다 크게 회자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경쟁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땅에 '갑'들은 다른 '갑'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겠기에 '을'을 다그치고 재촉하면서 결국 죽음으로 몰아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갑'에 밀린 '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을사조약'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을 언론을 통해 슬픔으로 듣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을들이 소수의 갑에 의해 밀리고 밀려 더 이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시대이니 을도 을 나름대로 서로 함께 할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없습니다.
갑도 을도 서로 함께 가는 길은 진정 없는 것일까요? 그래도 우리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마을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공동체를 살리자는 마음들이 모이고 있음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는 것처럼,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고 치매 노인과 장애인을 서로 돌보던 '서로·함께'의 마을공동체의 회복이 시급한 우리네 삶의 과제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즈음에 갑을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인생의 발걸음은 경에서 뒤처지고 쟁에서 쓰러진 을과 같은 이들과 '서로' 의지하며 '함께' 가는 길이겠습니다. 이 길에 '함께' 하겠다 하며 '서로'가 되어줄 이들은 마음을 열고 눈을 들어 보면 늘 가까이에 더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이 좋은 길, 서로 함께 가보시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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