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충민 생명공학연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기후 변화로 봄이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꽃들의 개화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요즘 연구원 신입사원 교육의 하나로 '연구에 대한 기본 소양'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수업 도중 “대한민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 낸 나라' … .
개인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으로 조그만 마을 길이 시멘트 신작로로 바뀌는 것을 보았고, 학생운동으로 중간고사 후에 바로 방학을 경험하기도 했다.
유학 생활 동안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기를 가진 것이 우리나라를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됐다. 당연히 많은 장점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끈기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아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세계인이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지만, 한국과 한국인을 그 정도로 이해한 책은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지금은 고인이 된 여동찬 교수의 책 『이방인이 본 한국과 한국인』이다. 프랑스인으로서 한국으로 귀화해 외국어대 교수를 지낸 여동찬 교수는 “한국인을 이해하려면 한국에 피는 봄꽃을 보면 된다”고 했다.
“한국의 봄꽃은 봄이 되자마자 서둘러 꽃을 피운다. 하지만, 뒤따라 오는 꽃샘추위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것이 한국 사람과 한국 역사에 묻어 있다.” 30년 전의 책이지만 그가 생각하고 평가했던 것이 그렇게 허황하게 들리지마는 않는다. 그 이후에 IMF를 겪으면서 여 교수님(사실 남자 교수님이시다)의 혜안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지도교수에게 심하게 혼난 적이 있다. 초기 힘든 시기에 오직 열심히 하는 것만이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잠을 아껴가며 실험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때마침 내가 한 실험이 너무 재미있는 결과를 얻어 들뜬 마음으로 지도 교수에게 달려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지도 교수에게 결과를 내밀었을 때 지도 교수가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은 “실험의 목적이 뭐였지?”였다.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실험의 결과가 좋은데 무슨 목적 타령인가? 대답을 못하는 내게 지도 교수는 그 결과를 휴지통에 던지면서 “목적이 없는 실험은 하지 말도록 해!”라는 말씀만 하셨다. 큰 충격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여교수님이 이야기 했듯이 나는 목적 없이 꽃을 먼저 피우려는 욕심에 사로잡혀서 실험했던 것이었다.
요즘 들어 많은 젊은이를 만나 보면 그들도 대부분 내가 가졌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 사람'이다. “인생 한방이지, 대박 나서 크게 한번 성공할 거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젊은이들을 자주 본다. 이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여동찬 교수님이 하신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식물학을 전공한 나는 공부를 하면서 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됐다. 식물의 존재 이유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 다음 세대에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꽃에 문제가 생기면 식물은 지구 상에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꽃이 상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은 꽃을 피우는 시기가 아니라 잎을 만드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잎이 튼튼한 식물이 만든 꽃은 웬만한 외부의 자극에도 잘 견디지만, 잎이 없는 상태에서 만든 꽃은 외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실 잎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능한 시기에 나무의 마디 마디에 움을 만들고 잎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힘든 시기가 올 때 꽃을 지켜 낼 수 없어진다.
이것이 내가 녹음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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