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갑질하다'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김의화]'갑질하다'

[중도시감]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승인 2013-05-16 14:26
  • 신문게재 2013-05-17 21면
  •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갑남을녀', 필부필부(匹夫匹婦),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쓴다. 선남선녀(善男善女)도 가치가 들어있는 표현이지만 '보통사람들'을 일컫기는 매한가지다.

'갑'과 '을'은 천간(天干)에서 따온 말이다. 순서로만 따지면 '을'은 단순히 '갑'의 뒤에 올 뿐이지만 사회적 필요로 쓰일 때 그 간극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현대적 의미에서 “내가 갑(甲)”이라는 말에 담긴 것은 지배, 군림, 우위, 장악, 결정권자, 처분권자라는 뜻과 같다. '을(乙)'은 두 번째 순서에 머물지 않고 모조리 '갑'과 반대의 처지에 놓여야 한다. '을'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최상의 덕목은 노예근성이어야 하고 '갑'은 그냥 '갑'이면 충분하다.

이미 보통사람들의 범주에서 벗어난 '갑'의 풍속도를 되새김질 해 들여다 보자. A380 항공기는 안전을 고려해 전력이 약한 380W를 쓴다. 전력이 약하니까 기내에서 물을 끓이면 섭씨 100℃에 못 미치는 70~80℃ 정도란다. 과학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미지근한 물'에 끓이는 라면은 불거나 설익게 돼 있다. 그럼에도 '라면 상무'는 승무원들이 '손바닥에 장을 지지는 높은 온도를 더하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지 않았다며 스스로 섭씨 100℃로 끓어 올라 여승무원을 폭행하셨다.

중견 제빵회사 회장인 '빵 회장'은 호텔 현관에서 주차 시비 끝에 호텔 직원을 빵 때렸다. '빵 회장'이 임시 주차장에 차량을 오랫동안 세우고 있자 현관 지배인이 “차 좀 빼주시죠”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자 빵 회장은 10여분간 폭언에다 지갑 속의 신용카드가 빠질 정도로 지배인의 뺨을 수차례 때렸다.

남양유업 본사 30대 영업사원은 50줄을 넘어 선 대리점주에게 '맞짱뜨시겠습니까?' '죽으시겠습니까?'의 어록에서 높인 말을 생략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얼굴이고, 분신이며 상징적인 국가 벼슬'이라 했던 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씨는 '미국에서 여성 엉덩이를 움켜쥔(grab) 것으로 확인되며 '性와대의 방미性과'라는 시사평론가의 촌평을 움켜쥐셨다.

'갑의 횡포', '갑질하다'는 신조어가 있다. 한국 사회의 승자독식 문화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 차별의 일상화나 체화(길들임)가 이런 '갑'의 횡포를 만연시키는 토양이다. 고생해서 얻은 권력과 재력으로 못 할 것, 안 되는 것이 뭐있겠느냐는 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고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를 못할 뿐 아니라 특권의식을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갑'들을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부른다. '갑질하는 것'을 개인의 부족한 품성과 오만방자함 때문이라며 개인차원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사회적 '중증'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아론 제임스 교수가 펴낸 『그들은 왜 뻔뻔한가』라는 책에서 무례하고 잘난 체 하는 안하무인의 인사를 맞닥뜨렸을 때 양심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대처방법을 귀띔한다. 저자는 '나는 특별하니까 이쯤은 해도 된다'고 믿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이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의 부도덕한 특권의식을 '분명하게 지적하라'고 말한다. 특권의식이 전염병처럼 퍼질 경우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최소한의 방어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권에 따라 자신은 손해 보는 것 없이 무임승차하며, 다른 사람이 부담할 비용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제지할 것을 강조한다.

다행스럽게도 소셜네트워크(SNS)에서 '갑'의 횡포가 전파돼 '빵 회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라면 상무'는 옷을 벗었고 남양유업은 검찰 압수수색과 주가하락, 불매운동이라는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상징적 벼슬인 청와대 전 대변인은 성추행의 상징이 되었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나라. 아! 대한민국!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