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갑'과 '을'은 천간(天干)에서 따온 말이다. 순서로만 따지면 '을'은 단순히 '갑'의 뒤에 올 뿐이지만 사회적 필요로 쓰일 때 그 간극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현대적 의미에서 “내가 갑(甲)”이라는 말에 담긴 것은 지배, 군림, 우위, 장악, 결정권자, 처분권자라는 뜻과 같다. '을(乙)'은 두 번째 순서에 머물지 않고 모조리 '갑'과 반대의 처지에 놓여야 한다. '을'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최상의 덕목은 노예근성이어야 하고 '갑'은 그냥 '갑'이면 충분하다.
이미 보통사람들의 범주에서 벗어난 '갑'의 풍속도를 되새김질 해 들여다 보자. A380 항공기는 안전을 고려해 전력이 약한 380W를 쓴다. 전력이 약하니까 기내에서 물을 끓이면 섭씨 100℃에 못 미치는 70~80℃ 정도란다. 과학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미지근한 물'에 끓이는 라면은 불거나 설익게 돼 있다. 그럼에도 '라면 상무'는 승무원들이 '손바닥에 장을 지지는 높은 온도를 더하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지 않았다며 스스로 섭씨 100℃로 끓어 올라 여승무원을 폭행하셨다.
중견 제빵회사 회장인 '빵 회장'은 호텔 현관에서 주차 시비 끝에 호텔 직원을 빵 때렸다. '빵 회장'이 임시 주차장에 차량을 오랫동안 세우고 있자 현관 지배인이 “차 좀 빼주시죠”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자 빵 회장은 10여분간 폭언에다 지갑 속의 신용카드가 빠질 정도로 지배인의 뺨을 수차례 때렸다.
남양유업 본사 30대 영업사원은 50줄을 넘어 선 대리점주에게 '맞짱뜨시겠습니까?' '죽으시겠습니까?'의 어록에서 높인 말을 생략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얼굴이고, 분신이며 상징적인 국가 벼슬'이라 했던 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씨는 '미국에서 여성 엉덩이를 움켜쥔(grab) 것으로 확인되며 '性와대의 방미性과'라는 시사평론가의 촌평을 움켜쥐셨다.
'갑의 횡포', '갑질하다'는 신조어가 있다. 한국 사회의 승자독식 문화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 차별의 일상화나 체화(길들임)가 이런 '갑'의 횡포를 만연시키는 토양이다. 고생해서 얻은 권력과 재력으로 못 할 것, 안 되는 것이 뭐있겠느냐는 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고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를 못할 뿐 아니라 특권의식을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갑'들을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부른다. '갑질하는 것'을 개인의 부족한 품성과 오만방자함 때문이라며 개인차원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사회적 '중증'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아론 제임스 교수가 펴낸 『그들은 왜 뻔뻔한가』라는 책에서 무례하고 잘난 체 하는 안하무인의 인사를 맞닥뜨렸을 때 양심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대처방법을 귀띔한다. 저자는 '나는 특별하니까 이쯤은 해도 된다'고 믿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이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의 부도덕한 특권의식을 '분명하게 지적하라'고 말한다. 특권의식이 전염병처럼 퍼질 경우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최소한의 방어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권에 따라 자신은 손해 보는 것 없이 무임승차하며, 다른 사람이 부담할 비용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제지할 것을 강조한다.
다행스럽게도 소셜네트워크(SNS)에서 '갑'의 횡포가 전파돼 '빵 회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라면 상무'는 옷을 벗었고 남양유업은 검찰 압수수색과 주가하락, 불매운동이라는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상징적 벼슬인 청와대 전 대변인은 성추행의 상징이 되었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나라.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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